극락전 /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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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16회 작성일 19-01-17 10:58본문
⋁.
처마 밑에 쪼그려
소나기 긋는다.
들어와 노다 가라
금칠갑을 하고 앉아 영감은
얄궂게 눈웃음을 쳐쌓지만
안 본 척하기로 한다.
빗방울에 간들거리는 봉숭아 가는 모가지만 한사코 본다.
텃밭 고추를 솎다 말고
종종걸음으로 쫓아와 빨래를 걷던
옛적 사람 그이의 머릿수건을 생각한다.
부연 빗줄기 너머
젊던 그이.
-극락전, 김사인 詩 全文-
鵲巢感想文
詩 한 수 읽다가 웃음을 터뜨려 본 일도 간혹 있다.
시제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본존本尊으로 모신 법당을 말한다. 여기서는 詩 문장 자체가 본존이 된 셈인데 문장 곳곳 살피면 불교적인 색채와 어떤 노장 사장의 냄새도 영 없지는 않아 보인다.
처마 밑에 쪼그려 소나기 긋는 것은 하늘에다가 밑줄을 긋는 것과 같은 시적 묘사다. 물론 자아가 아닌, 하늘과 신의 행위다. 비를 다스리는 건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중요한 일인 것처럼 묘사해 놓은 것도 참 웃긴 표현이다.
들어와 노다 가라, 무슨 혀 짧은 소리 같다. 금칠갑을 하고 앉아 영감은 얄궂게 눈웃음을 쳤다는 것도 의인화지만, 자아의 마음을 대신해 놓았다.
안 본 척하기로 하고, 다만 빗방울에 간당 거리는 봉숭아 꽃잎만 한사코 보는 자아다. 그 붉은 꽃물이 뭐라고 이리 오래 앉아 있었을까!
텃밭 고추를 솎다 말고 종종걸음으로 쫓아와 빨래를 걷던 옛 적 사람도 금시 잊어버렸다. 옛적은 방금 지나간 시간도 옛적이나 다름없고 머릿수건 같은 흰 낯짝만 씻을 생각만 하니,
부연 빗줄기 너머 젊던 그이, 하늘의 運을 꿰뚫고 마는 詩人 1분 전도 바로 지금보다는 젊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 금시 늙었다가 죽음과 탄생의 奇妙한 情趣다.
鵲巢進日錄
검정 앞치마가 내 입술을 뽑아 탁자에 올려놓는다.
안개 자욱한 커피 한 잔
지렁이가 흑룡으로 가라앉고 마른 연잎이 따뜻한 보자기가 되었을 때
카페 불빛은 낯 뜨거웠다.
불빛은 사라지고 어느 호수에 잠겼다.
어느 끈 없는 가방이 바위에 앉아 눈알을 낚는다.
*커피 / 鵲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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