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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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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6회 작성일 19-01-3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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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김이듬



나는 변하겠다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게
뼈를 톱으로 갈 때는 아프겠지
아픈 건 아포리즘만큼 싫다.
성형 전문의가 검정 펜으로 여자 얼굴에 직선 곡선을 그은 사진이
버스 손잡이 앞에 있다
전후의 사람이 동일인이라면
나도 하고 싶다

손님에게만 화장실 열쇠를 주는 카페가 싫다
수만 마리 구더기가 되어 주방을 허옇게 뒤덮고 싶다

나는 긴 목을 더 길게 빼고 들어가서 눕는다
목에서 허리에서 뼈 부러지는 살벌한 소리
내장을 터트리려는 듯 주무르다 압박
위는 딱딱하고 장은 다른 사람에 비해 아주 짧습니다
맹인 안마사의 부모는 젖소를 키웠다고 한다
펭귄이 어렵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나와 동갑이 미혼
고3 때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시력으로 이젠 거의 형체만 어슴푸레 보인다는 말을
왜 내가 길게 들어주어야 하나
인생 고백이 싫다
다른 감각이 발달되었다는 말을 믿어주어야 하나
그의 눈앞에서 나는 손을 흔들어보고 혓바닥을 날름거려보지만
웃지 않는 사람
자신의 굽은 등을 어쩔 수 없는
논산에서 순천 가는 길의 서른 개도 넘는 터널에 짜증 낼 수 없는
언제나 어두운 낮과 밤
들쭉날쭉하는 내가 싫다

이미 누군가 다 말해 버렸다 쓸 게 없다
가슴이 아프다
작아서

금천동 사거리 금요일 저녁 봄날
아무도 안 오는데 명성은 무슨
명성부동산 위층 명성지압원 간이침대에 엎드린 신세
잠들면 어딜 만질지 모르니까 정신 차리고
시를 쓴다
(화분에 씨를 심고 뭐가 될지 모르는 씨앗을 심고 흙에다 눈물을 떨어뜨려요.
눈물로만 물을 주겠어요. 그런데 씨가 그러길 바랄게요. 까지 쓰는데)

뭐 합니까 돌아누우세요
씨알도 안 먹힐 시도 되지 않고
야하게 꾸며 나가고 싶은 저녁이 간다
지압사에게 나를 넘긴다
눈멀어가는 남자가 인생에 복수하듯 나를 때리고 비틀고 주무른다 이러다
변신은 못 하고 병신 되는 거 아닐까




【감상】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은 잠자(Samsa)이다. 체코어로 잠자는 '나는 고독하다'는 뜻이다. “어느 날 아침에 그레고르 잠자가 이상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속에서 자신이 한 마리의 기괴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소설의 첫머리이다. 인간이 소외되고 고독했을 때, 버러지보다 못한 상태가 될까.

어쩌면 고독과 소외가 시의 씨앗이다.
'아프다-아포리즘'은 소리은유이지만, 언어와 시와의 관계, 몸과 통증 그러니까 이 시는 맹인 안마사와 시인의 견련성이 타진된다. '시력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되었다는 말'은 시가 가진 감각일 것이다. 통상의 감각에 대한 변신이다.

첫번째 단계에서 '성형'이다. 형태적 변화가 가장 쉽다. 그런 변화에 대한 시니컬은 위트이자 비애이지만 시인은 변신을 추구한다. 그 변신은 전면적이다. '수만 마리 구더기'처럼 '주방'을 습격하고자 한다.

맹인 안마사의 '고백'은 시인의 고백과 유사하다.
'살벌한 소리' '주무르다' '압박' '짧습니다' '형편' '거의 형체만 어슴푸레 보인다' 이런 '인생 고백이 싫다' '시력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된 인간은 아마도 맹인 안마사나 시인이나 등가일 것이다.

'혓바닥을 날름거려보지만' '굽은 등' '서른 개도 넘는 터널' '언제나 캄캄한 낮과 대낮'이지만 '이미 누군가 다 말해버렸다'고 진단한다.
'봄날'과 '명성' 그러나 넘쳐나는 명성들은 있다. '명성부동산' '명성지압원' 등등이 명왕성처럼 있지만, 화자는 '간이침대에 엎드린 신세'일 뿐이다.

누군가 변신을 위해 온몸을 성형하고 있을 때 화자는 '씨앗' '눈물' 어쩌고를 궁리하고 쓴다. 그러나 '씨알도 안 먹힐 시'
궁극적으로 변신하려다 '병신 되는 거 아닐까' 능청을 떨지만, '인생에 복수하듯 나를 때리고 비틀고 주무른다'면 시를 통해 어떤 짐승으로 변신할까.

전면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에서도 '변신'이 '병신'으로 소리은유(음성상징), 그러니까 언어유희가 등장한다. 냉소이고 위트이지만, 이 시는 사건에 대한 변조이고 변신이다.

언어는 맹인 안마사가 몸 다듬질하듯 하는 일이지만 통증의 깊이를 재거나 완치는 어렵다. 다만 좀더 감각적인 동물로 변신하기 위한 언어유희일지 모른다. 유희는 짐승이 가진 생존의 한 덕목이다.

시알은 '씨앗'은 될 수 없을지라도 정신의 싹은 풍성하게 할 수 있다. 감성을 주무르던 시대에서 감각을 때리고 비틀고 주무르는 시대로의 변신은 카프카가 예단했던 벌레로의 변신, 진화와 다름없다.

감각의 척후들이 변신을 거듭한다면 멀쩡한 사유는 어렵다. 명성도 명왕성도 멀기만 하다. 다만 벌레이거나 병신 되는 일을 피할 만큼, 정신과 온몸이 결딴날 만큼은 비틀지 마시라.

'간이침대'는 잠시 정신의 근육을 펴고 주무르는 곳에 불과하다. 시도 그렇다.

ㅡ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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