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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신호등이 켜지기 전 / 김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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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8회 작성일 19-02-0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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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신호등이 켜지기 전

김현서


또 가고 있다 갈비뼈 사이로 터벅터벅

토요일, 나는 벽에 박힌 햇살을 세고 그녀는 낑낑거리며 화분을 옮긴다

일요일, 나는 그녀가 옮겨놓은 화분에 사료를 던져주고 그녀는 긴 혀로 의자와 나를 엮어놓는다 나는 오른손을 흔들어주고

월요일 아침이면, 그녀는 시계의 배를 가르고 홍수에 휘말린 꽃을 꺼내 햇빛에 말린다 밤이 되자 꽃의 배란이 시작되고

화요일, 나는 내 자신에게 쫓기고 그녀는 824번 출근버스에 쫓기고

목요일 저녁, 사채업자가 방문했을 때 그녀는 제 몸을 뜯어 지불하고 나는 국을 끓인다

금요일, 장미는 담장을 기어오르고, 붉은 신호등이 켜지기 전 육수가 된 그녀와 육수를 들이키는 나

또 가고 있다 갈비뼈 사이로 터벅터벅


김현서 시집, 『나는 커서』, (문학동네, 2015)


【감상】

   시인은 상상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상상의 무릎과 발꿈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시인은 다중의 화자이다. 시 속에서는 다중인격자가 된다. 사물을 흔들어놓거나 재배치하거나 사물에게 말을 걸거나 사물의 호흡을 읽기도 한다.
   이 시는 분리된 자아의 스케치다. 일상의 일부를 감각의 눈으로 요약한다. '햇살'과 '화분' 등은 미장센이지만 상상력의 테두리이고 서술어의 분위기를 위한 인상적인 포착이다. '나'와 '그녀'는 동시성을 가진 존재이며 나를 벗어난 나이며 나에게 속한 그녀다. 그러니까, 현실 속에서 '나'와 '그녀'는 동일한 인격체이다. 상상 속에서 '그녀'는 분리되기도 내가 '들이켜' 하나로 귀환하기도 한다.
   나와 그녀는 어떻게 하루를 소모하고 또 '의자'에 엮이고 '쫓기고' '제 몸을 뜯어 지불하고' '국을 끓'여 '육수'가 될까
   그것이 되돌이표가 되어 다시 '갈비뼈 사이로 터벅터벅' 가고 있을까.
   그렇게 '또'
   의식과 무의식은 상대적 부피가 비슷하다고 한다. 현실과 이상의 계량적인 부피도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나, 의식과 현실은 무의식과 이상의 태도를 가라앉힌다. 단지 타자로 가능한 화자가 몸 밖으로 나들이하거나 감각적 관찰을 적을 뿐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대체로 별말이 없다. 사건도 시에서는 말문을 닫는다. 발화가 닫히면 언어는 자장을 끌고 자전한다. 그 공전주기를 읽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면 된다. 이 시는 나와 동거하는 그녀와의 '쫓기는' 일상이다.
   늑골 안에 장기들이 피를 옮기고 숨을 돌리려면 몸 밖의 나와 몸의 나는 부단히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그런 나들이를 나와 분리된 나(시 속에 떠도는 그녀)를 관찰하고 가만히 적으면 한 편의 낯선 시가 된다. 시는 인간을 벗어나려는 언어를 인간에게 고착시키려는 노력일지 모른다. 시는 무(巫)의 중언부언이 아닐 것이므로.
나를 떠난 화자가 한 주를 배회하다 갈비뼈 사이에 웅크리면 그 여독이 남을 글월을 읽으면 된다. 시는 민(民)의 타자이고 시민은 시를 읽는 사람이다.
   도시 어느 모퉁이에서 또 외롭게 시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어느 들녘이나 강변도 마찬가지다.

                                          - 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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