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쇠 요령 / 서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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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19회 작성일 19-03-10 03:48본문
놋쇠 요령 / 서상만
- 아내의 방
망미동 골동품 가계에서
놋쇠 요령 하나를 샀다
젊은 날, 아내의 곱던 목소리 같이
살짝 흔들어도 청아한 울림
파랗게 녹이 슬어
백년은 더 되었다고
가게주인이 세월에 덤을 달았다
이 요령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말문을 닫고
검불로 누운 그녀 침상에
호출용으로 놔 둔 놋쇠 요령,
그녀 손에서 요령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얼른,
그 녹슨 소리를 받아먹었다
이제 놋쇠 요령은 울지 않는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던 밤 들
* 서상만 : 1941년 경북 포항 호미곶 출생, 1982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시간의 사금파리> 등 다수, 2018년 제34회 윤동주 문학
상 수상
< 감 상 >
화자는 골동품 가게에서 놋쇠 요령 하나를 사서 검불처럼 누워있는
아내의 침상에 호출용으로 놔 두었다
아내가 흔들 때마다 그녀의 젊은 시절 고운 목소리 같은 청아한 소리
는 새벽 이슬 먹은 듯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답고 청아한 소리를 내는 것은 설령 놋쇠 요령뿐만 아니라
밭갈이 농부의 장단에 맞춰 밭갈이 소가 흔드는 낭낭한 워낭소리도
깊은 산 절간 처마끝에 매달려 바람결에 댕그랑 거리는 애달픈 풍경소리도
새벽 이슬 먹은 듯 청아 하고 아름답다
요령소리, 워낭소리, 풍경소리는 우리민족과 오랜동안 고락을 함께 해
민족 혼이 깃들어 있는 靈物스러운 소리로서 들을 때마다 깊은 情感을 느끼는데,
이제는 가고 없는 아내가 흔들 때마다
화자의 가슴팍을 철렁, 내려앉게 하던 그 때 그 영물스러운 놋쇠 요령소리는
또 한 번 이 독자의 가슴 속을 진하게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