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배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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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38회 작성일 19-03-19 17:00본문
염소
배한봉
염소가 말뚝에 묶여
뱅뱅 돌고 있다. 풀도 먹지 않고 뱅뱅 돌기만 하는 염소가
울고 있다.
우는 염소를 바람이 톡톡 쳐본다. 우는 염소를 햇볕이 톡톡 쳐본다. 새까맣게 우는 염소를 내가 톡톡 다독여본다.
염소 주인은 외양간 서까래에 목매달고 죽은 사람.
조문을 하고 국밥을 말아먹고 소피를 보고,
우는 염소 앞에서 나는 돌 한 개를 주워 말뚝에 던져본다.
말뚝은 놀라지도 않고 아파하지도 않고 꼼짝하지도 않으면서 염소 목줄을 후려 당긴다.
자기 생의 말뚝을, 하도 화가 나서 앞도 뒤도 없이 원심력도 같이 뜯어먹어버린 염소 주인.
뿔로 공중을 들이박을 줄도 모르고
세상 쪽으로 힘껏, 터질 때까지 팽팽히, 목줄 당겨볼 줄도 모르던 주인처럼 뱅뱅 제자리 돌기만 하는 염소가
울고 있다. 환한 공중에 동글동글 새까만 울음을 누고 있다.
프로필
배한봉 : 경남 함안, 현대시 등단, 김달진 창원문학상(2017), 월간 대하연 편집장
시 감상
나는 염소이거나 혹은 염소를 묶어둔 말뚝이거나, 염소의 주인이었을 때가 있었다.
아직도 나는 염소인지? 말뚝인지? 염소 주인인지? 정체성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제각각의 역할이 부담스러운 것인지? 역할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공중을 들이박을 줄 모르는 고단한 순박함을 새까맣게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것인지?
그런 날이다. 여적 봄이 온 줄도 모르는 겨울 끝자락에 파묻혀있다.
그만 일어나 나를 보자.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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