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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 / 박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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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5회 작성일 19-05-1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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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 / 박시하


롤로는 영혼의 집을 옮겼다


메이가 아팠기 때문이다

낯설고 낡은 부엌

금간 벽에 붙어 있던 잎사귀를 떼어내는 일을

롤로는 기도처럼 경건하고

비밀스럽게 했다.


집은 낡고 허물어져

깨진 창유리 사이로 상한 빛이 들어왔다

아픈 메이에게 무엇이 좋을까

롤로는 정성스레 소파를 놓고

식탁을 닦았지만


여기서도 메이는 낫지 않을 것이다

기다려도 나아지지 않으면

병은 무수한 잎을 돋을 것이다

롤로는 잎사귀 하나를 뜯어 벽을 장식하고

잎사귀 또 하나를 뜯어 머리에 꽂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 같다

아슬아슬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찬장을 열어서 프라이팬을 꺼냈다가

검게 탄 손바닥을 꺼냈다가


기도를 얼마나 했으면 손이 타버렸지

롤로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갈망은 기도를 낳았다.

기도는 절망을 낳았다

롤로는 다만 아무것도 낳지 않고 싶었다

낳는다는 건 퍼져나가는 일이지.

퍼져나가고 싶지 않았다

롤로는 그러나 낳고 또 낳았다

퍼져나간 그림자에서 잎사귀가 또 돋았다


금간 벽에 잎사귀를 붙였다 떼는 일이

메이와 함께 바다로 갔다

검은 손바닥도

정든 소파도 식탁도 가버렸다


롤로는 남았다

병도 남았다

찬장에서 기억을 꺼내 먹었다

가만가만

롤로의 영혼이 이상한 빛을 내며 상해갔지만


바다는 영혼을 가장하며 푸르렀다


* 박시하 : 1972년 서울 출생, 2008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눈사람의 사회>등 다수


< 감 상 >

영혼을 형이상학적 언어로 풀이 한다면 理性(감각+지성)이라 할까?   

영혼의 집을 옮긴다는 것은 이성이 이사를 한다는 것인데,

화자는 비문(非文)을 섞어가며 낯설게 하기로 독자의 심상을 흔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독자에게 주는 이미지는 멜랑코리와 니힐리니즘이 가미된 평범한 장삼이사

(張三李四)들의 페이소스를 그려놓은듯 하다


- 롤로는 남았다

- 병도 남았았다

- 찬장에서 기억을 꺼내 먹었다

-가만가만

- 롤로의 영혼이 이상한 빛을 내며 상해갔지만


- 바다는 영혼을 가장하며 푸르렀다


짓은 페이소스 속에서도 언뜻언뜻 밝은 이미지가 비추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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