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육체 / 김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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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94회 작성일 19-06-10 03:34본문
밤의 육체 / 김유자
손을 넣고 휘휘 젓다가
발을 꺼낸다
두 발은 두리번거리다,
발목 위가 사라진 걸 안다
왼 발은 숲으로 오른발은 바다로
귀를 꺼낸다 이것도 한 쌍이구나
열려 있어서 지킬 것이 없구나
두 귀가 다가와 옆에 서자,
나비가 된다
날갯짓 할 때마다 고요에 파문이 일고
입을 꺼내자 윗입술은 떠오르고
아랫입술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구름인가 은하수인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윗입술은 우주를 떠가고
심해에 누워 가만히 지느러미를 흔드는 아랫입술 사이로
유성우가 흘러내린다
고여 있던 말들이 심해어의 눈처럼 흐려진다
무엇을 꺼내도 나로부터 달아나는 밤
빛은 흩어져 있는 뼈와 심장과 귀들을 끌어당긴다
잠 깨면 바다와 사막과 행성 냄새가 난다
눈 발 가슴 한쌍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손목과 손가락, 종아리와 발목, 입술과 혀는 붙어서
서로 다른 생각에 잠긴다
발바닥에 풀물이 든 채 모래가 묻은 채 걷다가 문득
발 둘은 돌아본다
* 김유자 : 1957년 충북 충주 출생, 200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고백하는 몸들>
< 감 상 >
상상은 상상의 꼬리를 물고 어둡고 광활한 밤속을 활보고 있는데,
손을 넣어 휘휘 저으니 물컹, 잡히는 것은 놀기 좋은 캄캄한 밤의 적막이다
촛불을 껴자,
둥둥 떠다니던 팔 다리 입술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와 언제 그랫냐는 듯
킥킥 웃는다
다시 촛불을 끄니,
얼른 아랫입술은 바다 밑으로 달려가고
윗입술은 구름인가 은하수인가 갸웃거리며 우주로 떠난다
화자의 상상이 독자의 상상속으로 轉移 되고 擴散 되면서 바닷속과 우주속을
여행하는 즐거운 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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