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 / 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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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5회 작성일 19-07-02 06:24본문
처마 끝 / 박남희
사랑의 말은 지상에 있고
이별의 말은 공중에 있다
지상이 뜨겁게 밀어올린 말이 구름이 될 때
구름이 식어져서 비를 내린다
그대여
이별을 생각할 때 처마 끝을 보아라
마른 처마 끝으로 물이 고이고
이내 글썽해질 때
물이 아득하게 지나온 공중을 보라
이별의 말은 공중에 있다
공중은 어디도 길이고
어느 곳도 절벽이다
공중은 글썽 해질 때 뛰어내린다
무언가 다 말을 하지 못한 공중은
지상에 닿지 않고 처마 끝에 매달린다
그리곤 한 방울씩 아프게
수직의 말을 한다
수직의 말은 글썽이며 처마 끝에 있고
그아래
지느러미를 단
수평의 말이 멀리 허방을 보고 있다
구릿빛 지느러미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 박남희 : 1956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산맥> 주간, 시집 <고장난 아침>등 다수
< 감 상 >
물이 수중기로 변해서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다시 물이 되어
지상에 비를 뿌릴 때,
가는 길이 지나온 길이고 지나온 길이 또 다시 가는 길이라
무언가 다 말을 못해 그대의 눈가에 고인 눈물처럼
처마 끝에 고인 빗물이 글썽일 때,
색즉시공 (色卽是空) 공즉시색 (空卽是色) 우리들 인생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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