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의 사원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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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2회 작성일 19-08-01 05:22본문
몸속의 사원 / 이화영
당신과의 인연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이 된 후
내 몸속에 사원이 생겼습니다
사원의 누각에 걸린 鐘에는 당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바느질하듯 정으로 새긴 형상입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생이 비루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한동안 버려두었던
종 채를 찾아 누각에 올라갑니다
당신의 음성이 종소리 되어 울려 퍼져 나간 자리마다
우묵한 우물이 파였습니다
우물이 찰박찰박 깊어질 때
벌레와 몸을 기댄 풀잎이 고요를 젖히며 일어납니다
당신이 사원을 나와 천천히 뒤편의 숲으로 들어가
바위에 엎드려 태아처럼 웅크립니다
그런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몸은 신열이 올라
우물을 퍼 올려 마른 정수리에 끼얹습니다
당신이 내 태아인 듯 양수가 부풀어 오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영겁의 인연이라면 어느 전생에서는 내가 당신의
여식이거나 남편이기도 했을 겁니다
다가올 어느 사후에는 당신이 내 자식이기도 할 겁니다
그 사원은 내 자궁 안에 있습니다
사원과 몸을 바꾼 바람이 알려준 비밀입니다
* 이화영 : 2009년 <정신과표현>으로 등단, 시집 <침향>등 다수
< 감 상 >
당신을 향한 그리움은 내 몸속의 사원이 되었습니다
그 그리움을 잊지 못해 당신의 형상을 누각에 걸린 종(鐘)에 바느질 하듯
정으로 새겨놨습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누각에 올라 종을 치면, 당신의 음성은 종소리되어
울려 퍼지고 그 자리마다 우묵한 우물이 파였습니다
더 없이 아름답고 신비한 연가(戀歌)가 아니던가!
애절한 그리움이 꽃봉오리 터지듯 눈 앞에서 선연하게 피어오른다
내러티브 전반에 흐르는 이미지는 불교적 냄새를 풍기는데
영겁(永劫)이란 끝 없는 세월과 헤어지면 다시 만난다는 윤회(輪廻)사상이
얼핏 보인다
한 이웃은 5千劫 세월의 인연(因緣)이 있어야 또 이웃으로 만나고
한 부부는 7千劫 세월의 인연(因緣)이 있어야 또 부부로 만난다는데,
(1劫 세월 : 가로 십리, 세로 십리 성(城)을 쌓고, 城속에 겨자씨앗을 가득 채워서
천년에 한 알씩 꺼내어 그 씨앗이 다 없어질 때까지의 세월)
이웃과 부부는 그만큼 소중하다는 의미인 듯
윤회(輪廻)이론은 석가모니 전 고대 철학자 피다고라스가 창시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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