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을 걸었다 / 우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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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72회 작성일 19-08-04 18:45본문
누군가 말을 걸었다 / 우유진
매미가 운다 저 울음을 따라 걸으면
어느 곳에 닿을까
정지 화면처럼 길에는
사이렌 소리가 빨갛게 활개를 쳤다
굵은 선이 그어진 하늘 아래
여자와 곧 태어날 아이와 사라진 기도가
피뢰침으로 서 있었다
긴 메아리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은 산파였다가
오빠였다가 아는 언니였다가 결국은
느닷없이 핀 꽃이였다
바람에 날린 흰 속 옷
하필 걸려도 초록 잎과 잎 사이
그래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하늘
울음 끝에 걸터 앉은 여자는
내려가지 못할 소리 앞에서 최초의 인간처럼
자유롭다
나란하게 신발을 벗어두는 일
기억을 지우는 대신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삶
한 줄의 글은
아무 때나 그녀를 불러 낼 것이다
소리 끝에 핀 꽃은 까치발을 높이 쳐든 채
일부러 작아진다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지만
부끄러움은 언제나
희게 걸린 속옷만의 몫은 아니었다
두 손 포개고 너울대다
한 껏 부푼 긴장을
떠받치듯 울어대는 매미
촘촘하게 짜인 울음이 말을 걸었다
* 우유진 : 1978년 전남 보성 출생, 2001년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산문집 <상하이 모던>등
< 감 상 >
첫 행부터 미로 속 같은 혼미가 시작 되는데 그 입구도 매미의 울음소리고
출구도 매미울음소리다
한 여름 피터질 듯 작열하는 매미 울음 속에서 피뢰침처럼 우뚝 서 있는 임신한
여인의 가냘픈 모습이 주인공이다
이 여인은 우리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군상(群像)의 한 모습(提喩)으로
화자의 현란한 상상력은 이때부터 펼쳐지는데,
내러티브 전체에 흐흐르는 이미지는 묘연하고 아득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면서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내면적 아킬레스건을 슬쩍슬쩍 건드리고 있다
아름다움, 깨끗함,서글픔, 애절함, 아담과 하와까지 동원된 총천연색 색깔 드라마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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