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터너 / 허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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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8회 작성일 19-08-25 02:50본문
페이지터너 / 허은희
그대는 여기까지다
등 뒤로
여기까지만 온다
신호등 아래 엎드려 신호를 기다리는 리트리버
안내견의 목줄에 귀를 세우는 시간
개의 호흡이 사내의 길을 낸다
아스팔트 온도가 발바닥을 채 달구기도전에
떼어낸 거리들을
거기
세워두고
눈동자를 버리고
귀를 숨기고
팔다리를 퍽럭이며 입을 가린 그림자들
신호를 다 건널 때마다
리트리버의 맥박과 사내의 숨소리가 포개진 여기
여기는 지금 막 이동 중이다
여기는 지금 막 잘려져 나갔다
닿는 곳마다 지워지는 에피소드
그대는 다시
등 뒤에 도착한다
* 허은희 : 1966년 인천 출생, 2003년 <시사사> 등단, 2016년
제28회 인천문학상 수상, 시집 <열한 번째 밤>외 다수
< 감 상 >
신호등 아래서 청신호를 기다리는 장님과 안내견의 모습이 화자가
넘기고 있는 페이지이다
시간의 페이지가 쉼 없이 넘어가는 여기 이 시간 개의 호흡은 장님의
생존이다
안내견의 맥박과 사내의 숨소리가 포개진 여기는 지금 막 이동 중이다
지금 여기는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고 새로운 여기가 휙 휙 지나가는
우리네 생
운명은 인생의 안내견,
잠시 신호등 앞에 머물렀다 아! 속절없이 내 인생 또 한 장 넘어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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