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下弦) /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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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8회 작성일 19-09-22 02:27본문
하현(下弦) / 강정
북풍이 지나고 난 후 반쪽으로만 드러난 얼굴
정신줄 놓은 피에로가 퍼마시다가 남긴 술이 거기 담겼다
뭇매를 맞고도 자꾸 웃음이 새던 때가 있었다
어떤 남자가 내게 사랑 고백을 하고
그 사랑이 폭력이었다고 느껴 같이 따라 웃자고 꼬드기던 때의 그 눈빛
내 남성의 뿔난 자긍(自矜)이 자궁처럼
뭔가 떠받고 마셔야만 할 숭늉 그릇처럼 펑펴짐해 질 때
그렇게 돌연 태내가 그리워 울다가
태양 뒷길 차거운 별 무덤들의 지도가 거미줄처럼 출렁거릴 때
나는 내 슬픔의 반쪽이 점점 닳아
왼손잡이용 칼처럼 밤하늘을 흠집 내는 걸 보았다
반대편 어둠이 홀짝홀짝 퍼마시다 남은 빛의 뼈대가
원시인의 부메랑처럼 뇌수를 찢는다
하늘 별 밭에 떠오른 몸의 화석들
생의 반쪽자리 고인돌이 지줏돌도 없이 지난 생을 주유(周遊)한다
* 강정 : 1971년 부산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처형극장>
외 다수
< 소 감 >
익숙한 습관을 깨뜨리며 화자의 깊은 내면속에서 낯설게 떠오르는 하현 달
활시위처럼 아래로 휜 달속에 피에로가 마시다 남긴 술이 담겨져 있고
여성인 화자를 꼬드기던 관능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의 웃음 같은 달 빛,
어두운 밤하늘 거미줄처럼 출렁이던 별 무덤들 속에 떠오른 한 조각 달은
화자로 하여금 그리움에 얼힌 먼 옛날의 정념(情念)들을 불러 일으키게한다
화자의 심상(心象)이 필자의 심상 속에서 홀짝홀짝 주유(周遊)하고있는데
얼핏 떠오르는 황진이의 애뜻한 한시(漢詩) 한편!
반달 / 황진이 詠半月/ 黃眞伊
누가 곤륜산에 옥을 쪼개다가 誰斷崑崙玉 (수단곤륜옥)
직녀의 머리 빗을 만들었는가 栽成織女梳 (재성직녀소)
견우가 한번 떠난 후에 牽牛一去後 (견우일거후)
수심에 쌓여 푸른 하늘에 愁擲碧空虛 (수척벽공허)
던져 버렸네.
옛 시인으로 산뜻하고 애로틱한 비유(比喩) 감각이 현대 시인 못지않게
세련되어서 감탄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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