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법/ 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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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86회 작성일 19-10-14 08:39본문
필법
서정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필력으로 누군가 붓을 길게 휘둘러 놓은 궁서체 같은 강줄기를 따라 걷는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소낙비에도 물결이 고요하다 오히려 제 안으로 흡수하는 표면의 흔들림
이 세상 살아가는 일이란 저렇듯 저만의 뚜렷한 필법 한 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출한 책 속 누군가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놓은 명구 한 줄 아직 터득하지 못한 나는 문득 진부했던 시간의 페이지를 넘긴다 그 속 서표처럼 꽂혀있는 설움 한 조각 튀어나오고 햇빛 밝은 창틀에 때아닌 그늘을 끼워 넣던 저녁이 강의 필력을 읽는다 몇 겹 물결로 출렁이는 제 안의 소요와 소를 파는 절망을 어디론가 흘려보내고 또 흘려보내며 오직 한자리, 저곳에서 저 만의 깊고 깊은 흐름을 구가했을 필법을 읽는다
그 옆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 줄기를 곧게 세운다 목을 길게 뽑은 두루미들이 오랜 시간 발목을 묻는다
내 눈앞 진경으로 걸려있는 저 명서체(明書體) 한 폭!
프로필 서정임 : 전북 남원, 계간 문학 선 등단, 시집[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시 감상
가을이 절정으로 가기위한 절차를 수행한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여름 땡볕의 고행을 거쳐 무성한 잎을 우렁우렁 키우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강쇠바람에 온통 붉은 잎으로 제 몸을 치장하는 것이다. 필법이란 그런 것이다. 갑자기 만들어 지거나 한 순간 어쩌다 우연히 흉내 내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봄, 여름의 순환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늦가을 즈음 우리의 삶에 대한 필법에 대해, 완성될 필법에 대해 고민해 보자. 지금부터. 곧 겨울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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