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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평론]詩, 가설假設을 세우자 - 김부회 (우리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허영숙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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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884회 작성일 19-12-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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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가설假設을 세우자


 

-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우리는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허영숙

나이롱환자의 재계약/ 김명이

짝퉁가방/ 김일호

 

 

가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실을 설명하려고 임시로 세운 이론을 말한다. 흔히 가설은 검증되지 않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이야기하기에 추론이나 예측, 또는 어떠한 사실에 상상력이 보태진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실’에 나름의 상상력이라는 말이다. 보이는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미를 만들거나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가설의 힘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전제를 달고 현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현상이 만들어져 보이게 된 형태를 자신의 생각으로 또 다른, 어쩌면 진실일 수도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가설이라고 정의하면 필자의 이론에 맞는 정의가 될 것도 같다.

 

가설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검증이라는 절차 일 것이다. 하지만 검증은 과학이라는 수단을 통한 어떠한 수학적 대입이 필요할 절차 일뿐, 문장, 글, 시 속에서의 가설은 검증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시 속에서의 가설은 과학의 가설과는 개념이나 온도 차이가 분명 다르다. 과학 속에서의 가설은 근거가 되는 이유와 일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시 속에서의 가설은 검증이 아닌 시인의 주제에 대한, 주제를 설명하거나 설득하거나 명징하게 보이기 위한 일종의 비논리적이며 동시에 논리적이어야 하는 정반대의 이유를 갖고 있어야 시의 생명력이 살아나는 것이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폐지가 실린 리어카를 밀고 가는 할머니가 있다. 이것으로 가설을 세워보자. 할머니에게는 자식이 있으나 여하한 이유로 같이 살 수 없어 혼자 산다. 할머니는 오래전 명문대학을 나온 재원이었으나 할아버지의 병치레 수발을 들다 심신이 망가져 피폐해졌다. 할머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여 생활이 어려움에도 불고하고 폐지를 주워 생활비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주기 위해 통장을 만들어 차곡차곡 돈을 만드신다. 어쩌면 할머니의 추레한 가방 속에는 통장이 여러 개 있을지 모른다. 석양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할머니의 어깨는 어쩌면 그것을 바라보는 내 어깨보다 더 가벼울지 모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런 식의 가설을 세워보면 그 가설의 뼈대 사이사이 현상과 상상, 긍정과 부정, 이야기와 현실이라는 자재를 넣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설의 방향성이다. 또한 가설의 Identity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옳은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눈이다, 눈의 조리개가 향하는 곳이 할머니의 과거라면 나의 과거에 부합하는 가설을 세워야 할 것이며 현재라면 그 역시 나도 현재가 될 것이다. 물론,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가설의 소재가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설을 만들게 된 동기인 할머니의 모습이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를 보는 내 눈, 눈의 초점에 방향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눈의 초점이라는 말은 생각이나 인식의 결정체다.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이 인식이다. 인식은 일련의 정신적 과정이기에 정신을 형성하게 된 나의 생활 반경과 자세가 중요하다. 바꿔 말하면 삶을 어떻게 영위했는가에 따라 눈의 방향성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할머니와 나는 전혀 관계가 없는 타인이다. 타인을 내게 이입해 나와 동일시되는 부분, 부분 또는 교집합을 만드는 것이 바로 가설이라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가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나 상상력이 아닌, 일치하는 동기가 부여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가설로 쓰인 작품이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이며 공감이 있기에 소통이라는 시의 궁극의 목표가 성립되는 것이다.

 

가설의 목표지점이나 가설의 구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설을 만들게 된 ‘이유’의 근본적인 인식 기반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시를 짓다보면 턱 막히는 순간이 온다. 또한 초보시절에 흔히 겪거나 듣는 말이 결구로 갈수록 힘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아주 원시적으로 생각해 보자.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우리는 어쩌면 생각을 먼저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제목/ 첫 줄/ 다음 줄 그리고 그다음 줄, 이렇게 습관적인 글짓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전체라는 큰 그림 혹은 밑그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글과 글 말과 말, 첫 행과 다음 행, 이야기에 이야기를 다만, 붙여나가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자는 매번 이 코너의 논고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있다. 생각이다, 사유다. 그림이다. 이는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밑그림을 먼저 그리는 것과 같다. 내가 이 그림의 주제를 혹은 색채를 질감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형상을 보고 형상을 스케치하고 그다음 형상에 대한 자기만의 색을 선택하기 위하여 팔레트 위에 여러 물감을 놓고 이 색과 저 색을 혼합하여 색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형상을 보고 형상에 대한 모습을 각인한 후, 생각이라는 팔레트 위에 살아온 시간들을 모두 올려놓고 각각의 살아온 시간을 혼합하는 것이 시를 쓰는 일이다. 시간을 혼합하다는 것은 가설을 혼합한다는 것이다. 형상에서 보이는 가설과 내가 살아온 시간의 가설을 모두 혼합하여 새로운 질감의 한때를 삶이라는 그림에 입히는 것을 필자는 올바른 시 쓰기라고 강조하고 싶다.

 

묘사한다거나 이미지화한다거나 서술한다거나, 이 모든 일련의 행위는 반드시 생각이 수반되어야 한다. 단순하거나 생각 없이 다만 묘사에 그치거나 이미지에 국한되거나 하는 방식의 시 쓰기는 단어와 단어의 부정교합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어떤 묘사, 서술, 이미지든 자신이 들어있지 않으면 시는 글에 불과한 잡글이 된다. 시 강의를 가끔 하다 보면 질문의 양태가 빤하다. 어느 집단이든 묻는 질문의 범위가 예상을 초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질문은 기술적인 것이 많다. 어떻게 묘사? 어떻게 이미지화? 어떻게 서술? 어떻게 시제를? 어떻게 첫 행을 이런 부류의 질문이 태반이다. 사실 가장 먼저 듣고 싶은 질문은 시는 무엇을 위해 쓰나요?라는 질문을 듣고 싶다. 일부의 사람들은 시를 쓰는 이유가 시의 본질을 많이 훼손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문학상, 신춘문예,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기 위해, 프로필 한 줄 보태기 위해, 이 모든 행위들은 시의 본질과 아무 연관이 없다. 문예지를 읽다 보면 시인의 사진과 프로필이 줄줄이 달려있다. (필자 역시 그렇다.) 가장 먼저 눈이 가는 부분은 프로필이다. 이 사람은 어디에, 이 사람은 어떤 상을, 이 사람은 신춘에, 또한 그런 프로필이 그분의 작품을 읽는 내 눈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엉터리 문장이라도 프로필이 쎄면(상투적 표현을 사과드린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내 오독 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프로필마저도 가설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마치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의 등 뒤를 보는 듯한 가설. 바람직한 것은 문예지에 작품 하나를 싣더라도 프로필이 전혀 없고 사진도 없고, 다만 작가의 작품과 글만 실린다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볼 수 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하면 필자의 잘못일까? 물론 프로필에 실린 그 많은 수상과 당선과 이력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당연히 칭송받아야 하고 그분의 노고를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작품을 해석하는데 방해가 되거나 오독의 동기가 된다면 그것자체로 불편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잠시 글의 논조가 다른 방향으로 갔다.

 

이번 달의 소제목인 필자의 가설에 대한 논리를 검증하기 위해 고영민 시인의 시작법詩作法 중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을 잠시 인용한다.

 

시를 쓰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시를 쓰는 것은 집 짓는 것과 같다.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 하물며 개미도 집을 짓고, 까치도 집을 짓고, 벌레도 집을 짓는다. 사람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당연히 집을 잘 짓는다. 이 말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집을 짓는 순서를 모를 뿐이다.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시에서 기둥은 바로 줄거리이다. 처음부터 고대광실을 지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기둥부터 세워라. 기둥만 세우면 반은 집을 지은 것이다. 기둥만 세우면 비닐만 올려도 집이 되고, 양철만 올려도 집이 되고, 짚을 얹혀 놓아도 집이 된다. 먼저 기둥을 세워라. 기둥은 줄거리이다. 자기가 접한 대상에 줄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제 트럭에 소나무 두 그루가 실려 가는 장면을 보았다. 자, 그럼 이걸 가지고 줄거리를 만들어 보자.

 

“뽑혀 실려 가는 나무 두 그루를 보니,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는 가난한 내외 같다. 어디로 옮겨질지 불안하다. 잔뿌리들은 어린 새끼들 같다. 트럭에는 살던 낡은 가재도구도 있다. 늦은 저녁 옮긴 자리에서 두 소나무는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늦은 저녁밥을 짓는다. 두 내외(소나무)가 어둑한 집에서 밥을 먹는다.”

 

그대로 쓰면 된다.

 

「시작법 - 고영민」일부 인용

 

모던 포엠 12월호 시, 가설을 세우자를 기초로 하여 몇 작품을 선별해 보았다. 물론 선별된 작품들이 모두 가설이라는 말이 아니라는 말이며, 가설과 관련 없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둔다. 이 역시 가설의 하나라는 교묘한 변명도 하게 된다. 필자 역시 어떤 가설 중의 하나일 수 있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보듯, 혹 그 반대이거나 영화 ‘식스 센스’의 반전과 같은.

 

가장 먼저 소개할 작품은 허영숙 시인의 [우리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라는 작품이다. 산행 길에 죽어서 누운 나무에 앉아있다 문득 생각나게 된 ‘나’와 주변의 ‘나’와 주변이 아닌 ‘나’를 허영숙 시인만의 독특한 문체대로 조밀하게 혹은 차곡차곡 글자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쓴 작품이다. 작품을 소개하기 전, 먼저 허영숙 시인의 글색을 알아보는 것도 작품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영숙 시인의 글은 딱히 모던 스타일이다. 혹은 고전적이다 혹은 사실적이다라고 논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강철의 알레고리를 갖고 있거나 독특한 문체의 페이소스가 있거나 이중적 구성요건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의 구성과 본문의 전개 방식은 매우 자연스럽고 잠재된 힘이 넘친다. 멋진 문장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세련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아무렇게나 걸쳐 입었는데 보기에 상당히 차려입은 느낌이라면 정확한 답이 될 듯하다. 기 발표한 ‘바코드’ ‘나비그림에 쓰다’ 및 몇 작품으로 미루어 볼 때 어떤 시적 리듬감을 타고 난 듯한 느낌을 주는 시인이다. 작품을 살펴본다.

 

우리는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허영숙

 

 

오래 걷다 잡힌 발의 물집을 위로하자고

죽어서 누운 나무의 등뼈 한가운데 앉는다

나무가 눕는다는 것은

생사의 금을 긋는 일

햇살과 바람의 간섭으로

틔우거나 피우거나 찬란하거나

보내거나 견디거나 하던 극복의 기록이

오히려 투쟁이었다는 듯

살아서 서 있다는 것이 형벌이었다는 듯

마른 수피 한 벌 입고 누워버린 나무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골진 자리에 하얗게 피고 있는 독버섯

죽은 나무에 햇살 구멍을 만들어 분주히 들락거리는 개미들

아직도 파랗게 날 선 풀꽃 군락을 지날 때도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이 여기 있다

닫히는 중인 줄 알았는데 한 세계가 새로 열리고 있었다

다른 종들의 거처로 먹이로 다시 쪼개지고 쪼개지다 보면

마침내 흙

물집 잡혔다고 주저앉은 내 발도 마침내 흙

봄을 알리지도 못하고

언젠가는 봄을 보지고 못할 것 끼리 거룩하게 섞이고 섞여

다음 생이 목생이라면 오백 년을 산 나무의

일 년 생 잎으로 와서 함께 펄럭여볼까

 

조근조근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썼다. 마치 어느 산등성이에서 잠시 쉴 때 불어오는 미풍 같은 맞바람을 얼굴에 대고 있는 듯한 느낌의 작품이다. 첫 행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삶과 삶의 방식과 삶만이 갖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든다. 죽어서 누운 나무 등뼈 한가운데 앉아 나무를 보니 나무가 살아온 이야기가 들린다. (가설이다) 나무가 살아온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의 어느 지점과 일치하거나 공감하고 있다.

 

햇살과 바람의 간섭으로

틔우거나 피우거나 찬란하거나

보내거나 견디거나 하던 극복의 기록이

오히려 투쟁이었다는 듯

살아서 서 있다는 것이 형벌이었다는 듯

마른 수피 한 벌 입고 누워버린 나무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발에 물집이 잡혀 나무 등걸에 앉아있는 시인은 나무다. 어느 때의 햇살, 어느 시절의 바람, 씨앗이었던 초심의 계절과 수많은 계절의 밤낮을 보낸 것들을 극복의 기록이라고 한다. 어쩌면 투쟁이었을지도 모를 그 극복의 시간을 나무에게서 읽는다. 아니 나무가 시인의 기록을 읽는다. 서로 공유하며 서로를 읽는다. 살아서 서 있었다는 것이 형벌이었다는 듯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나무의 가설은 바로 나의 가설로 동질화되고 그 지점에서 소통되어 우리에게 가감 없이 전달된다.

 

삶은 형벌이 아니다. 삶은 말 그대로 삶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 삶이라는 것이 형벌이 될 때가 있다. 그저 서 있다는 자체가 형벌일 때가 있다. 나무가 직접 내게 형벌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나무를 형벌이라고 본 그 가설에서 나무는 그 형벌의 구체적인 것들을 보여준다.

 

골진 자리에 하얗게 피고 있는 독버섯

죽은 나무에 햇살 구멍을 만들어 분주히 들락거리는 개미들

아직도 파랗게 날 선 풀꽃 군락을 지날 때도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이 여기 있다

 

그 형벌의 의미는 희생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형벌이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보는, 내가 생각하는 형벌인 것이다. 죄와 벌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유추하게 된다.

 

닫히는 중인 줄 알았는데 한 세계가 새로 열리고 있었다

다른 종들의 거처로 먹이로 다시 쪼개지고 쪼개지다 보면

마침내 흙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조차도 다른 종들의 거처, 먹이, 장작으로 쪼개지고 다시 쪼개진다는 것은 윤회를 넘어, 보시布施의 개념으로 이해가 될 수 있다. 보시와 희생은 같으면서도 다른 말이다. 준다는 것과 줘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나무의 생채기가 말하는 것은 보시의 개념이며 그런 나무를 읽는 것은 시인의 가설이다. 진솔한 삶의 영역이 반영된 가설이기에 설득력을 얻는다. 이 같은 보시의 단서가 되는 문장은 ‘마침내 흙’이라는 말이다.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물집 잡혔다고 주저앉은 내 발도 마침내 흙/

 

내 발도 마침내 흙/ 나무와 나의 동질성, 운명, 궁극의 목적,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설의 종착점이 물아일체라는 것이다. 물체와 나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시를 쓰는 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생명이라고 말한다. 통칭의 생명은 흙이다.

 

두 번째 소개할 작품은 김명이 시인의 [나이롱환자의 재계약]이라는 다소 낯선 시제의 작품이다. 많이 아프거나 다치지도 않았으면서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아픈 척하는 환자 혹은 환자 코스프래 하는 것을 익살스럽게 이르는 것을 나이롱환자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2007년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입원 환자 중 17%가 나이롱환자에 해당된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나이롱환자의 최대 피해자는 보험회사 일 것 같지만 실제 보험가입자의 보험금이 올라가는 효과로 인해 가입자가 최대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김명이 시인의 작품은 충돌을 야기한 낡은 트럭과 트럭의 소유자에 대한 그 가족에 대한 가설 (어쩌면 이라는 표기를 분명히 해둔다.)로부터 시작한다.

 

나이롱환자의 재계약

 

김명이

 

앞 범퍼가 낡아 충돌 부위 묘연한 트럭이 뒤에 있고

이니셜 새겨진 셔츠 입은 그가 뒷목 붙잡고 검은 차에서 내렸다

도토리 한 톨만큼 찌그러진 사고일 뿐인데...

당신은 나이롱환자를 선택하시겠습니다

이렇게 안내하는 건 불법인 줄 알지만

내겐 최선의 고객 서비스가 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당신이 모니터링 만족도에 최고라고 대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감히 당부하자면 물먹을 거란 말입니다

 

리어카에 묶인 손전등으로 밝혀지던 골목

합의금에 둘러앉아 끄적거리는 밥상의 곰국 한 사발과

심야 알바 차디찬 손에 휴일을 줍는 것이라면

쪽빛 벗겨진 함석지붕 집

배달 반찬 더듬는 노모 눈에 손자가 비칠 수 있다면

구름에서 빠져나오는 모과 같은 달이

푹 눌러쓴 모자의 측면 이마 흉터와 왼쪽 콧날을 조명하던

폐지 묶는 사내의 일당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새벽녘 어느 일가 포개 타는 낡은 트럭에서 상강보다 먼저 뿜어지는 서리

비단 대신 내 살갗 감싼 나일론을 당기며

편리와 저렴과 질긴, 다용도를 악용하는

당신은 비열한 환자, 재계약을 거절합니다.

 

시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는 사회에 대한 고발 내지는 사회 풍속에 대한 외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는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즉, 삶의 현장 속에 존재하는 문학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김명이의 작품은 가능한 스토리에 맞춰 구성된 작품이며 동시에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입힌 시적 질감의 농도가 색으로 말하면 향토색을 담고 있는 듯하다. 더 정확하게 친근한 비유와 단어의 선택으로 인하여 시가 본래 담지하고 있는 내적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환자의 상대인 어느 가족, 합의금을 줘야 하는 어느 가족 구성원의 삶의 모습을 묘하게 조명한다는 것은 상대방인 환자 코스프래 하는 상대방의 모순을 극대화하여 조망하는 역할을 한다. 한쪽이 약하면 한쪽은 더 강한 형태의 시적 대비는 시가 주지하는 주제에 대한 명징성을 드러내는데 아주 좋은 기제라고 볼 수 있다.

 

리어카에 묶인 손전등으로 밝혀지던 골목

합의금에 둘러앉아 끄적거리는 밥상의 곰국 한 사발과

심야 알바 차디찬 손에 휴일을 줍는 것이라면

쪽빛 벗겨진 함석지붕 집

배달 반찬 더듬는 노모 눈에 손자가 비칠 수 있다면/

이니셜 새겨진 셔츠 입은 그가 뒷목 붙잡고 검은 차에서 내렸다

도토리 한 톨만큼 찌그러진 사고일 뿐인데.../

 

이러한 대비는 얼핏 갑과 을의 관계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지, 그 관계라는 것의 허구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관계의 허울에 대해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알면서도 속아야 하는 일종의 희극적 페이소스도 담겨있다.

 

이렇게 안내하는 건 불법인 줄 알지만

내겐 최선의 고객 서비스가 돼야 합니다/

 

제삼자, 혹은 관망의 입장에서는 불법을 불법으로 감수해야 하는 위치적 근원도 있을 수 있다. 결국 ‘을’의 입장은 다음 행에 전부 담겨 있다.

 

새벽녘 어느 일가 포개 타는 낡은 트럭에서 상강보다 먼저 뿜어지는 서리/

 

의외로 상강의 서리는 매우 차갑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추위로 인해 매서운 겨울의 서리보다 차갑다. 낡은 트럭 속의 가족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사고와 합의금과 심야 알바와 쪽빛이 벗겨진 함석지붕 집에 살고 있다. 이 모든 장면이 의미하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가설이 의미하는 것은 천천히 살펴보면 답은 언제나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구를 소개하면서 두 번째 작품의 소개를 마친다. 정의에 대한 독자의 선택은 몫이다. 삶의 몫

 

비단 대신 내 살갗 감싼 나일론을 당기며

편리와 저렴과 질긴, 다용도를 악용하는

당신은 비열한 환자, 재계약을 거절합니다.

 

마지막 소개할 작품은 김일호 시인의 [짝퉁 가방]이라는 작품이다. 김일호 시인의 작품 역시 위에 소개한 몇 편의 작품과 동일하게 스토리를 갖고 있다. 시에서 스토리는 매우 중요하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지대한 작용을 하는 것은 아마 스토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달과 육 펜스를 쓴 미국의 작가 서머셑 모옴은 작가는 스토리텔러라는 말을 했다. 이야기꾼이라는 말이다. 꾼이라는 말의 어감은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쯤으로 해석해둔다. 누군가 스토리가 없는 시는 왠지 호감이 안 간다는 말을 했다. 스토리가 있는 작품은 독자 입장에서 시의 三美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연하면 시의 삼미는 재미, 흥미, 의미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시는 재미로 읽다 흥미로 살아나고 의미로 생명을 얻는 문학이라고 보면 맞다. 세 가지 요소가 행간 속에서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준다면 그것처럼 좋은 시는 없는 것 같다.

 

짝퉁가방

 

김일호

 

난 그냥 네가 좋았다니까

눈꼬리를 치켜든 너의 풍만한 모습이

툭하면 우는 나와 같아서

모가지를 건들건들 흔들고 팔짱을 끼고 다니면

우리가 어제 처음 만난걸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지

밤새도록 깡소주 마시고 거품 문 채로 구석에

팽개치지만

싸구려 콜드크림으로 빡빡 문지르고

나는 오늘도 거릴 활보 하죠

꽉 물어 열리지 않는 입은 얼마나 완벽한가요

썩은 이가 들킬지 모르니,

가슴에 단 뺏찌에 노란 립스틱

색 바랜 머리엔 빨간 장밋빛 물 드리면 되죠

실리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인공눈물을 흘리는 우리는

한 쌍의 잘 어울리는 짝퉁

이제 사랑에 기대진 않지만

그건 또 다른 얘기

이름이 중요한 것도 알지만

누구든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그뿐

전화번호 같은 건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명품이란 것만 알고

거짓말은 애초부터 없었다니까

건성으로 툭 건드려도

창자를 꺼내 보여드리고 싶은

우린 너무 빨리 물이 드니까

함부로 만지는 당신, 인스턴트 사랑

 

김일호의 짝퉁 가방은 여러 가지 형상을 지니고 있다. 짝퉁 가방은 때론 가방이면서 때론 상대이면서 때론 나와 다른 타인이면서 때론 ‘나’를 닮은 ‘나’라는 역할에 충실하게 여러 배역을 소화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한 쌍의 잘 어울리는 짝퉁

이제 사랑에 기대진 않지만

그건 또 다른 얘기

이름이 중요한 것도 알지만

누구든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그뿐

전화번호 같은 건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명품이란 것만 알고

거짓말은 애초부터 없었다니까

 

이 부분에서 김일호 시인이 만든 가설 속에 빠져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거짓말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가설, 어쩌면 거짓말은 처음부터 거짓말이라고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짝퉁을 짝퉁으로 인식하고 구매하고 사용한다면 그것을 짝퉁이라고, 짝퉁의 범주 속에 사로잡혀 살아가야 하는지? 에 대한 답이라면 답일 수 있을 것 같다. 짝퉁은 고급 브랜드를 모방하여 만든 가짜 상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짝퉁이라는 말이 본래부터 짝퉁으로 태어 난 상품이지만 내 인식의 어느 곳에 그저 가방으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태생적 한계를 벗어 난 가방일 뿐이다. 어쩌면 김일호 시인의 가방, 혹은 짝퉁에 대한 가설은 그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구 부분에 그에 대한 답이 존재한다.

 

함부로 만지는 당신, 인스턴트 사랑

 

함부로 만지는 당신, 짝퉁을 짝퉁으로만 생각하는 당신, 짝퉁이라고 무시하는 당신, 짝퉁 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당신, 실리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인공눈물을 흘리는 당신, 싸구려 콜드크림으로 얼굴을 빡빡 문지르고 다니는 나를, 우리를, 나와 너를, 내 주변의 ‘나’를 모두 인스턴트라고 한다면 정작 고급은 고급이 아닌 짝퉁의 모조품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작품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소개를 맺는다.

 

우리는

한 쌍의 잘 어울리는 짝퉁/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가을인가 싶더니 겨울이다. 겨울인가 싶더니 한 해가 간다. 신년에 무엇을 생각하고 다짐했는지 까마득이다. 늘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한다. 마치 대단한 무엇을 할 것처럼. 결국 살아봐야 인생 다 그렇다는 말이 실감 나게 만든다. 인생! 뭐가 있을까? 그 해답을 알고 싶다면 당장 시집 한 권을 돈 주고 구매해서 읽어보자. 아무 시집도 좋다. 유, 무명의 이름값이야 그렇다고 치부하자. 서점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니면 서재나 책장에서 눈에 걸리는 대로 한 권을 선택해서 글자 하나하나 천천히 눈에 담아보자. 어쩌면 의외의 소득이 나타날지 모른다. 시는, 어떤 시든, 시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의미를 새기는 것보다 의미에 또 다른 의미라는 가설을 세워보자. 다가오는 새해에 어떤 가설을 내가 내게 세울 것인지? 가설로 그칠 가설의 짝퉁을 만들어 낼 것인지? 그건 우리 결심의 몫이며 실천의 몫이며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한 해가 이렇게 간다. 시쳇말로 쿨 하게 보내고 싶다. 그래야 내가 쿨 해지니까. 나는 나의 짝퉁이 아니니까.

 

한 해 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드린다. 새해엔 좀 더 다양하고 섬세한 글로 만날 것을 스스로 다짐하며 맺는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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