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올 때 /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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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98회 작성일 20-02-04 07:26본문
저녁이 올 때 / 문태준
- 제31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내가 들어서는 여기는
옛 석굴의 내부 같아요
나는 희미해져요
나는 사라져요
나는 풀벌레 무리 속에
나는 모래알, 잎새
나는 이제 구름, 애가(哀歌), 빗방울
산 그림자가 물가의 물처럼 움직여요
나무의 한 가지 한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어요
새들은 나뭇가지를 서로 바꿔가며 날아 앉아요
새들이 날아가도록 허공이 왼쪽으로 크게 비워놓았어요
모두가
흐르는 물의 일부가 된 것처럼
서쪽 하늘로 가는 돛배처럼
* 문태준 :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 등 다수
< 소 감 >
저녁의 한 때가 구부렁구부렁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제31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이면서도 왜곡, 뒤틀림등 고도의 이미
지 충돌 없이도 자연스러운 사물화가 그득하게 느껴지고 있다
우주의 괘도가 짜맞춰지듯, 행간의 난간에서 보이지 않는 사유들이
기어올라 와 예쁜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1행 1연이 주는 힘 속에서, 짧게 토막내어 이어가는 기술의 묘미 속에서
입은 꾹 다물었으나 온 몸으로 튀어오르는 사유의 물결들,
그 물결 속에서 나라는 속성이 산뜻하면서도 무겁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마치 서쪽 하늘로 가는 돛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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