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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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06회 작성일 21-09-24 08:34본문
그런 것
정끝별
겨울 가지가 허공 언저리에 긴 손가락을 내민다면
수작이란 그런 것
공터의 아이가 부푼 공을 차올려 공의 날개가 하늘을 베고 달아난다면 만짐이란 그렇게 휙 하고 쓱 한 것
사무친 장대비를 웅덩이가 받아낸다 흔쾌한 혼례다
바닥이 물컵을 껴안으려 온몸을 내던진다
가을 뱀이 땅속을 파고들 듯 쏟아진 물이 바닥에 스며든다
그런 것 상처인 듯 화해인 듯
암소 눈이 여물통에 고인 물빛을 닮아간다 궁륭의 별이 지상의 눈빛을 닮아간다 묵묵하다 동행이란 바로 그런 것
십이월 눈석임물은 마실 가는 곳을 알려주지 않는다 문밖 눈사람 노부부를 저녁이 데리고 저문다 이별이다
먼눈이 멀어진 눈빛을 노래한다
최후의 시란 그런 것 그리 상투적인 것
- 시집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에서, 2019 -
- 겨울 가지의 수작, 아이가 찬 공이 파란 하늘을 만지는 것, 장대비를 받아내고 있는 웅덩이, 상처인 듯 화해인 듯한 물의 스밈, 묵묵한 동행, 이별처럼 마실 가는 물석임물, 이미 멀어진 눈빛을 노래하는 먼눈 같은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최후의 시.
오늘 아침 양변기에 앉아 이 시를 읽으며 내가 쓸 최후의 시에 대해 묵묵한 감상에 젖어들었다.
아마도 내 생의 최후도 상투적인 시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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