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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풍장 /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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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조경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912회 작성일 15-08-26 11:05

본문

      풍장


      최영철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는 윗도리 하나를 척 걸쳐놓듯이
      원룸 베란다 옷걸이에 자신의 몸을 걸었다
      딩동 집달관이 초인종을 누르고
      쾅쾅 빚쟁이가 문을 두드리다 갔다
      그럴 때마다 문을 열어주려고 펄럭인
      그의 손가락이 풍장되었다
      하루 대여섯 번 전화기가 울었고
      그걸 받으려고 펄럭인
      그의 발가락이 풍장되었다
      숨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려고
      창을 조금 열어두길 잘 했다
      옷걸이에 걸린 그의 임종을
      해가 그윽히 내려다보았고
      채 감지 못한 눈을 바람이 달려와 닫아주었다
      살아있을 때 이미 세상이 그를 묻었으므로
      부패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진물이 뚝뚝 흘러내릴 즈음
      초인종도 전화벨도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을
      바람이 와서 부지런히 닦아주고 갔다
      몸 안의 물이 다 빠져나갈 즈음
      풍문은 잠잠해졌고
      그의 생은 미라로 기소중지되었다
      마침내 아무도 그립지 않았고
      그보다 훨씬 먼저
      세상이 그를 잊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식아 희야 하고 나직이 불러보아도
      눈물 같은 건 흐르지 않았다
      바람만 간간이 입이 싱거울 때마다
      짠물이 알맞게 배인 몸을 뜯어먹으러 왔다
      자린고비 같은 일 년이 갔다
      빵을 꿰었던 꼬챙이만 남아
      그는 건들건들 세월아 네월아
      껄렁한 폼으로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경매에 넘어간 그를 누군가가 구매했고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기 전
      쓸데없는 물건으로 분류된 뼈다귀 몇 개를
      발로 한번 툭 걷어찼다


      홀로 죽어가는 고독사가 점점 만연화 되고 아시아에서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끌어안고 가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이 풍장되고 있다 일찍 발견되면 그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원룸
      베란다 옷걸이에 목을 맨자가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갈 때, 나는, 그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생을 놓아버린 자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고 감히 말하지 말기로 하자
추천1

댓글목록

하늘은쪽빛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하늘은쪽빛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도, 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
고독사..그 은유가 참 시리고도 먹먹하게 다가오네요

조금 열린 문틈으로 그윽히 내려다 보는 해,
부지런히 넘나드는 바람..
따뜻한 체온이 있어야 할 자리를 그렇게 채우고 있네요

저릿한 아픔으로 전달되는..시,
머물다 갑니다...

조경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조경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같아도
이제는 우리이웃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공감해 주신 하늘은쪽빛님께 감사드리며
저녁노을 아름다운 평온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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