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랍(蜜蠟)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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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蜜蠟)
=이재훈
오염된 목덜미에 손톱을 갖다 대면 당신의 목소리가 팔뚝 위를 뛰어다니지. 낭창낭창한 힘줄들. 소곤대며 두려운 밤을 지켜 주지. 기착지는 어디일까. 뼈들이 비대하게 자라고 피의 색깔이 변하는 도시. 스스로의 시간에 묶여 하늘의 목소리는 듣지 못하지. 싸우고 차지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지. 내장을 편하게 하는 법칙들. 슬픔 없는 몸의 성분들.
제발, 먼 곳을 쳐다보지 마오. 바로 아래 구두를 쳐다보오. 자꾸 내려앉는 눈꺼풀을 신경 쓰시오. 당신에게 조금 미안하오. 이 땅이 종착지는 아니오. 잠시, 거치는 세계잖소. 그렇다고 너무 억울해 마오. 이 땅이 당신에게 어머니를 선사했잖소. 당신의 피를 받아 들이키는 신비의 소리가 들려오오.
몸을 만져 보면 구멍 난 몸 여기저기서 걸쭉한 피가 흐르지. 추억이라 하기엔 낭만적이지. 자 이제 갈 때가 된 것. 당신에게 밥이 될 수 있을까. 살갗이 투명하게 변하지. 끈적끈적하게 녹아 가지.
얼띤感想文
목덜미 같은 하루가 목덜미를 벗고 낭창낭창하게 앉았다. 이 시를 읽는데 송강 정철이 지나간다. 시인으로만 남았으면 후대에 그리 악평은 없었을 것이다. 선조 때 서인의 당수였던 정철,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왕의 부탁에 위관이라는 수사 책임을 맡았다. 많은 제자가 이를 반대했지만, 정철은 직접 나서 약 천여 명에 이르는 동인을 죽였다. 사건의 주모자는 이미 자살하고 없었지만, 또 이 사건 또한 모함이자 의문투성이었던 사실, 다만 왕권 안정을 위한 선조에 계략이었음을 말이다. 어쩌면 왕도 신하와의 관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어떤 이해관계였다. 훗날 광해군처럼 폐위되면 죽음은 면치 못했기에 당쟁과 옥사는 끊임없이 일었다. 그러고 보면 숙종은 환국정치로 왕권은 안정되었다.
조선의 정치를 보면, 어쩌면 글 좋아하는 선비의 문화였지만 어쩌면 바깥으로 뜻을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면도 있다. 가령 효종의 북벌은 아쉽기만 하다. 당시 노론 당수였던 송시열의 반대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우리는 익히 그가 북벌론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마음뿐이었다. 청나라의 사정을 속속 알고 있었던 효종은 제 뜻을 펴지도 못하고 독살에 가까운 의문을 남기며 죽음을 맞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노론은 정조 이후 완벽하게 정적을 물리치고 살아남아 훗날 이완용에 이른다. 세도정치로 쇠약할 대로 쇠약한 국권에다가 개혁의 바른길을 잡지 못한 조선, 국권 상실에 이르기까지 참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였다.
조선의 역사가 밀랍처럼 잠시 밀려와 그 느낌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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