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뉴런 / 박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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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24-01-03 10:37본문
2024 오륙도 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거울 뉴런
박기준
봄빛이 창문 틈에 끼여 헐떡거리던 거실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강남스타일 노래에
아빠의 말춤을 따라 하는 천사
거울이 춤을 춘다
어머니의 늘어진 하품이 할머니 품으로 들어간다
텔레비전 귀여운 여인을 바라보며
햇살 품은 얼음같이 녹아내리고
웃음이 전염되어 온다
지옥의 문에서 향기가 솟아나고
나락의 늪에서 꽃이 피고
도파민이 만든 또 다른 세계
천지를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광풍
문장 속에 고립된 작은 집
식량처럼 줄어드는 단어와 안개처럼 사라지는 감정
버리지 못해 잊지 못하는 것
기억으로 포화한 행간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불완전하여 믿을 수가 없다
태곳적부터 모방의 천재
닮고 싶어 하는 욕망, 세포가 필사하는 시
늙은 베르테르가 어설픈 시어에 잡혀
시인 흉내 내다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
광장 속의 거울
옆으로 늘어선 나를 흘끔 쳐다본다
나의 모습은 진짜일까
노을 낀 망각보다 무서운 거울 뉴런
깨진 거울, 부서진 조각마다 내가 갇혔다
자폐, 시
심사평
#시 부문= 신춘문예는 문학 지망생에게는 모두가 설레는 자리이면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이다. 그러기에 이를 심사하는 심사자들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예심을 통과해 올라온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들이 표출하는 내용들이 모두가 오늘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심사자들은 여기서 한두 가지 조건을 더 염두에 두었는데 가장 유념한 것은 신인다운 패기와 도전 정신이었다.
다음으로는 이 시인이 시 창작을 하는데 얼마만큼 지속가능한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 였다. 단순히 작품만을 보고 다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기준을 놓고 볼 때 다음의 두 작품에 눈길이 갔다. 하나는 신재화 씨의 「푸날라우 베이커리」였고 다른 하나는 박기준 씨의 「거울 뉴런」이었다.
「푸날라우 베이커리」는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과 꿈이 부부를 통해 가볍고도 상쾌하게 전개되고 있다. 생업에 쫓기는 그리 밝지만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긍정의 메타포가 생기있게 시상을 이끌어가고 있다. 모더니티를 지향하면서도 비판보다는 화해의 동일화를 추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다.
「거울 뉴런」의 작품을 통해 시적화자는 “지옥의 문에서 향기가 솟아나”는 세계를 보여준다. 이 시적 상상력은 그리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흡입력이 있다. 광장에 만약 어마하게 큰 거울이 있어 거기에 우리의 기억들이 재생된다면 광풍과 작은 집과 감정 사이의 어느 모습이 과연 우리의 참 모습일까? 정상의 말 흐름을 방해하면서 시적화자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점이 두 작품에서 다 새롭다. 문제는 틈 사이가 잘 맞지 않아 삐꺽거림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조만간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하였다. 두 작품을 가작으로 밀어 올린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예심 최성경(문학박사), 류호국(시인) ‧ 본심 이지엽(경기대 교수, 문학평론가, 대표집필)〉
글로써 풍경화 그리는 설레임
당선소감
가난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차비를 아껴가며 헌책방에서 시집을 사서 읽었습니다. 삶이란 무엇이지? 에 대한 물음에 해답이 나오리라 생각했습니다.
같은 질문을 한 친구와 2년을 삶과 죽음과 존재 이유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하고 문학에서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뜻이 통해 의형제를 맺고 ‘밥 먹고 사는 게 먼저이다’라는 어설픈 정의를 내고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게 시는 노을 낀 망각보다 무섭게 거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3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난 후 그 친구가 시집을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시는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모처럼 내리는 함박눈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점심에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세상은 하나의 풍경이다. 미리 그려진 풍경이 아니라 하나하나 내가 그려야 할 풍경이다. 그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글을 시로 만드는 작업이다.’ 김부회 시인님의 가르침대로 삶과 자연과 인간을 시의 중심에 놓고 글로써 풍경화를 그려 볼 생각입니다.
시를 놓고 싶을 때마다 따뜻한 격려를 해 주시는 김부회 선생님, 김신영 교수님 고맙습니다. 글향동인 문우들, 국민일보 신춘문예회 회원들, 그리고 언제나 나의 곁을 사랑으로 지켜주는 아내, 그 밖의 가족들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의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오륙도 신문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오륙도 신문이 빛나도록 더욱 노력하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박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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