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먼 아들이 되어 =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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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먼 아들이 되어
=김 안
차라리 당신의 눈먼 아들이 되길 기다릴까, 내 눈을 도려내 눈먼 아들로 태어나, 당신의 손으로 장성해 온종일 당신의 말 받아 적길 기다릴까, 이제 입도 없이 얼굴도 없이 당신은 누구와 사랑을 나눌까, 이곳엔 신이 열아홉이나 되고, 당신의 귀신이 내 신발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내 몸속의 방들로 도망간들 무슨 소용이 있나. 고苦와 악惡을 피해 나는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는 여전히 중세이고, 나의 말은 여전히 광언기어狂言綺語이고, 언제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나, 눈 없이, 이렇게 늙은 칼이라니.
문학과지성 시인선597 김 안 시집 Mazeppa 28p
얼띤感想文
누군가 마트에 뛰어간다 까만 봉지를 들고나온다 외국인이다 딸아이까지 업고 들어간다 진열대 놓인 물건과 물건들 여러 곳을 눈여겨보다가 다시 한번 더 돌고 어 여기 라면도 있어 딸아이는 잡은 엄마 손을 뿌리치고 저만치 돌며 사탕을 만지작거린다 엄마는 딸아이 있는 곳까지 가서 고개를 젓고 아이는 곧 울음을 터트릴 듯 인상을 찌푸린다 엄마는 인상을 접어두고 식료품 쪽으로 가고 두부와 오이와 가지를 담고 좌측 코너에 진열된 마른 빵 하나를 더 집는다 아이는 저만치 홀로 가버린 엄마를 놓칠세라 다시 뛰어오고 들어온 문을 나선다 그 문을 잡고 내가 들어간다 =崇烏=
위의 시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이곳엔 신이 열아홉이나 되고, 당신의 귀신이 내 신발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신이 열아홉이란 말? 우리말 속담에 섣달이 둘(열아홉)이라도 시원치 않다는 말이 있다. 섣달은 일 년 중 가장 마지막 달이다. 이 말은 시일을 아무리 늦추어도 일을 성사시키기에는 마뜩잖다는 말로 해가 가고 해가 와도 안 된다는 말과 같다. 섣달이 둘이나 섰으니, 예전엔 섣달 기준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관심사였다. 11월로 두기도 하고 12월로 두기도 했다. 지금은 설이 1월이지만, 수천 년 전부터 고민한 섣달, 그 설은 12월 1일로 설로 쇤 적도 있다. 사람들은 이달을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이라 했다. '설달'이 '섣달'로 된 것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1월 1일로 설이 바뀌었지만, 섣달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면 열아홉이란 말은 처녀가 시집갈 나이지만 시집을 못 간 것에 유래한다. 기회를 열아홉이나 줬는데 일의 말미는 어렵고 해서 나온 말이다. 신이 열아홉이나 되는 건, 그만큼 발하기 어려운 시의 주체적 입장이 선 것이고 내 신발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내 몸에서 발하여야 할 신은 어디라도 닿지 않으니 말이다. 이에 대한 고통과 악은 시 객체가 겪어야 할 일이건만 시는 또 거울이므로 그 반대의 얼굴에도 당하는 일이다. 여기는 여전히 중세라는 말, 시대적 구분인 중세로 쓰지는 않았겠다. 시의 특성으로 살핀다면 중은 아무래도 무거움일 것이고 중重, 세는 기세나 가늘고 미미한 세나 씻거나 조릿대 세로 변용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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