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뜰 수 있다면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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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뜰 수 있다면
=박은지
활활 타오르는 불을 구경했다
저게 우리의 미래야
나는 거대한 캠프파이어 같다고 생각했지만
너의 눈동자를 오래 들여다보니 웬지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뜨겁고 빛나는
우리가 머물던 의자도 불타고 있을걸
의자 아래에선 잡초가 적당한 높이로 자라고
우리가 흘릴 아이스크림을 기대하며 발등을 오르던 개미
의자 옆에는 결말을 쌓아 만든 돌무더기가 있었다
돌무더기를 뒤덮은 나무 그림자도 뜨겁게 빛나고 있을까
밤새도록 타는 소리를 들었다
꿈에선 결말의 비밀이 불탔고
모든 이야기가 다시 끓기 시작했다
들끓는 꿈
새벽은 연기가 점령했다
아침 냄새와 저녁 냄새를 모두 불에 빼앗겼다
계곡을 따라 불이 사라진 자리를 걸었다
검은 하늘 아래 검은 재가 가득했다
모두 비슷한 색을 갖고 있었다
발이 묶인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게 불타고도 남은 게 있다니
미래는 정말 멋지다
너의 말을 들으니 걸어 볼 마음이 생겼다
키들키들 웃으며 타고 남은 재를 서로의 얼굴에 묻혔다
손과 얼굴이 모두 검게 변했다 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 비슷한 색을 갖고 있었다
너의 눈동자만 들여다보았다
민음의시 288 박은지 시집 여름 상설 공연 26-27p
얼띤感想文
돌을 올리며=崇烏
의자에 앉아 있었다 파도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순식간에 따그닥 거리며 띵띠디딩띵띵 뽕 춤추는 배를 보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멀미를 부여잡고 있었다 조용히 해라 재수 없는 소리 그만 좀 하고 열심히 해봐 그사이 한 사람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여기서는 돌 던지며 오지 말라는 듯 얼굴 붉히며 있었다 창밖은 푸르고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푸른 대문 앞에 놓고 간 택배 물건은 뜯지도 않고 그대로 놓아두고 가야 할 곳은 가야 할 곳을 잊은 채 가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책상 위 초코파이 봉지는 바람에 나불거리고 그 빵가루를 먹으며 미래를 생각하는 아침, 바다와 바다를 잇는 저 낭떠러지에 꿈은 무엇인가? 우리가 만나는 일에 대해 굳이 수직과 바닥과 돌을 떠올리며 얘기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수직은 높이를 낮추면서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바닥이 어디지 고통 속에 점점 멀어져간 가을이 오고 있다는 사실, 창밖을 봐봐 가을이 벌써 발밑에 오고 있어 비참한 마음으로 노을 진 마을에 들러 일탈을 보며 얼룩진 모양을 지워야 했다 또 빛이 내린다 환풍기는 계속 돌고 있었다 아직 채 그려지지 않은 먹물 자국을 지우며 붓을 들었다 天命待事人盡 또박또박 걷고 있는 하늘 아래 햇볕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대가 창밖에서 추위를 떨쳐내며 죽음을 맞이할 거라곤 생각지 않아 아름다운 소릴 들으면서 한 다발의 얼굴을 꾸리면서 초코파이 하나를 아프리카 흑인에게 건네는 일을 하지만, 왜 죽음은 항상 화장실에서 이루는 거지 하얀 변기에 앉아 수천 년을 생각하면서 퉁퉁 부은 배를 잡고 흔드는 일 탈탈 털어내지도 못하는 가죽의 울음 같은 것을 세상 모든 계단은 천국이 아닌 지옥이라는 걸 모르고 산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 생애는 비굴한 데 있으니 무릎을 조아리며 갖은 아부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듣지 않았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하며 분위기만 흐려놓았다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야 보라고 이게 사는 거야 이렇게 갇혀 있는 게 제정신이냐고 남은 건 저 돌무더기뿐이잖아 시간은 벌써 9시 물의 형체는 사라지고 둥그런 돌덩이 하나가 뚝 떨어진다 튕겨 오르는 분노를 삭제하고 바다서 떠밀려온 빙산처럼 돌 볼끈 쥔 남자 아무리 비벼도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시퍼런 눈을 가리며 나는 그 옆에 앉아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시인이 쓴 것만큼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러자니 시를 읽으며 잠시 낙서를 해 본다. 시인은 야외 캠핑하러 갔나보다. 캠프파이어를 즐기며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며 새벽이 오기를 고대하며 말이다. 시인께서 다룬 시어는 특출난 건 없다. 캠프파이어를 보면서 뜨거운 불을 쬐며 시를 생각한 것뿐이었다. 굳음과 견고함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돌을 생각하며 돌무더기만 바라보았다. 돌무더기 하니까 고구려가 지나간다. 고구려인은 저 중국인보다도 돌을 더 잘 다루었다는 사실, 그것은 성곽과 그들이 누운 무덤에서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전 세대였던 고조선 또한 마찬가지다. 몇십 톤 아니 몇백 톤이나 되는 돌덩이를 돌과 돌 사이 각을 맞춰 올려놓은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곳은 성지였으며 무덤이었다. 밤새도록 타는 소리, 불이 내뿜는 미래의 소리였다. 불처럼 뜨거워지고 싶다. 묶은 발을 풀며 활활 날아오르는 열기에 다시 젊음을 태울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 비릿한 아침을 맑은 이슬 한 모금으로 씻어 본다. 잘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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