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세요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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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김소연
너는 들어오지 마---그 안으로 들어간 누군가가 외쳤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이불을 걷고 거실로 나와 찬물 한 컵과 마주하여 앉았다 창 바깥에는 사다리차가 누군가의 세간살이를 분주하게 나르고 있었다 찬물이 식어가는 동안에 찬물을 마시지 않았다 파란 박스가 네 개씩 포개어져 누군가의 거실로 차곡차곡 운반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누군가는 곧 이웃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들어오지 말라던 그 안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나에게 남긴 한마디를 나는 모두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찬물이 식어가고 있다 세수를 했다 흰 비누 거품으로 칠해진 얼굴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았다 이 얼굴은 한 번도 진심으로 미워해본 적이 없다 악몽이 보호하고 싶어 하는 나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사 왔어요--- 인터폰 화면 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채워져 있다 현관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안으로 쏟아졌다
얼띤感想文
이 시에서 중요한 맥을 하나 짚으라고 하면 찬물에 있겠다. 찬물이 찬물을 바라보며 각종 가사 도구를 옮기는 일은 시의 독해다. 파란 박스가 네 개씩 포개어져 있다는 말은 시의 기승전결을 얘기하는 것이겠고 아니면 사라는 의미에서 죽음이 겹쳐 보일 수도 있겠다. 찬물이 식어가는 과정 여기서 좀 더 진행하면 얼음이 되겠지. 얼음은 시의 고체성을 대변한다. 시인 허 연의 시가 갑자기 스쳐 지나간다.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너에게 빠지는 일, 천년을 거듭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 일.” 물론 이 시에서는 온도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식어가고 있다는 말에서 인식의 과정을 생각한다. 거울을 바라보고 선 자아, 또 다른 자아, 또 다른 자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사 왔어요. 인터폰 화면 속, 누군가의 얼굴이 채워져 있다. 벌써 완벽하게 떠낸 것이다. 마치 한지 용액 속에서 한 장씩 떠내는 한지처럼 들어오세요? 아니 저는 됐습니다. 사실, 이 시는 행간이 나누어져 있는데 나누어져 있는 게 더욱 난해하게 와닿아 붙여 보았다. 붙이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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