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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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
=전희진
두 눈이 쑥 들어간 노모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찍는 경향입니다
심술이 잔뜩 나서 딸년은 목젖이 부어오른 목소리로
오늘따라 웃어 보란 말도 해 주지 않습니다 셔터를 팡팡 눌러 대는 경향입니다 장님 같다는 말은 입속으로 꿀꺽 삼킵니다
평생을 엎질러진 실핏줄처럼 그녀의 두 눈에 아른거리던 딸년이 오늘따라 마땅해 보이지가 않고
막다른 길을 어서 넘어가고 싶은 애꿎은 오후가 베란다를 뒤집습니다
속마음을 들킨 하얀 면내의가 뒤집히다 말고 쨍강, 태양의 민낯을 구릅니다
시작시인선 0440 전희진 시집 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86p
얼띤感想文
바깥 나가는 일 있으면 항상 선글라스는 빠뜨리지 않는다. 당뇨가 있으시니 햇볕에 온갖 사물이 흑백처럼 보인다고 했다. 거기다가 세숫대야에 먹물 한 방울 똑 떨어뜨린 것처럼 흐릿하다고 하신 어머님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시를 꽤 좋아하시어 옛 시인 김소월이라 하면 거의 다 외울 듯이 잘 읊으신다. 글을 쓴다는 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수 있는 시 한 편도 없는 거 보면 어머님은 참 대단하다. 이 시를 읽으니 선뜻 어머님이 지나간다. 두 눈이 쑥 들어간 노모와 오늘따라 마땅해 보이지 않는 딸년에서 태양 빛 아래 고이 내보일 시 하나 선글라스 오후는 어떻게 보냈는지 곰곰 생각해본다. 아무리 셔터를 팡팡 눌러 대보아도 별일 없었고 그래도 셔터 찍을 만한 별일이 있었으면 하고 내내 목젖을 만져보아도 여전히 별일은 없었다는 저녁에 애꿎은 마음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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