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강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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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250110)
나비/ 강성남
엄마는 나를 꼭꼭 접어 봄 속으로 내보냈다
괴어놓은 돌이 자주 흔들리는 정릉동 산허리, 새 교실 맨 앞자리엔
고향에 두고 온 책상이 따라와 있었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 앞에서
내리면 종로소방서가 보일 거야 청진 약국을 끼고 한옥 담장을 따라가
서울 지리에 깜깜한 나는 아담한 ‘아담’이라는 요정을 용케 찾았다
커다란 나무 대문 안에 연못, 수면에서 반짝이던 물비늘이 일제히 나를
비추었다 마루엔 속저고리만 걸친 여자들이 화투를 치고 세상의 꽃들은
모두 모여 피고 있었다 주인 마담은 내 이름을 안다고, 빳빳한 지폐
한 장을 쥐여주었다 진홍색 모란처럼 온몸이 물들어 나오는 내 귀엔
드르륵 장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열세 살 분홍 원피스엔 자꾸만
꽃가루가 달라붙었다
봄이 그려준 약도 한 장 들고, 봄 속의 봄을 건너고 있다
2025 강성남 시집(당신과 듣는 와인 춤) 13쪽
(시감상)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다는 말이 무색한 정국이다. 어쩌면 봄은 요원한 봄이 될지도 모른다. 계절은 어김없이 올지언정 가슴은 아직 봄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열세 살 분홍 원피스의 날개를 가진 나비들이 꽃을 사모하는 동안 여름이 올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시계와 같은 것인데 역행하려는 사람과 도심의 응원봉 불빛과 외침과 함성으로 인해 이 못난 겨울이 아궁이부터 달구고 있다. ‘화무십일홍’의 진리를 깨우친다면 봄은 쉽게 올 것이다. 꼭꼭 접어놓은 날개를 활짝 펴고 싶다. 연두색 들판의 온도를 체득하고 싶다. 오늘은 깨지만 내일은 다시 꾸어지는 것이 꿈이다. 봄이 그려줄 약도 한 장 얼른 손에 쥐고 싶다. 나비가 되고 싶다. 분홍 원피스를 입은.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강성남 프로필)
농민신문 신춘문예, 전태일 문학상, 전 국어논술 강사, 2025 시집(당신과 듣는 와인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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