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미의 창백 =신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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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의 창백
=신미나
절정이 지나간 백장미는
오래전 옛날을 지나온 얼굴이고
당신은 한 톨의 소금도 집어먹지 않고
싱겁게 웃었습니다
투석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무서운 꽃밭에서 풀어졌습니다
장미가 맹렬히 붉기를 거부할 때
모든 색에서 멀어져
다만 흰빛으로만 희미해질 때
속눈썹이 붉은 아이가
검은 입을 크게 벌리며 오고 있습니다
양팔을 벌리며 당신을 데리러 오고 있습니다
문학동네시인선 221 신미나 시집 백장미의 창백 012
얼띤 드립 한 잔
오십 하나라고 했다. 동생의 나이가 영영 스물댓쯤 됐을까 하는 생각만 가지다가 어느 문상객의 말에 언뜻 깨쳤으니까. 집의 형제는 모두 팔 형제다. 이 중 다섯이 먼저 떠나갔다. 떠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만 삶의 무게가 오죽했으면 손 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촌 동생의 얼굴이 궁금해서 열어본 카톡 창에는 ‘다들 감사합니다’ 문구와 하트 문양의 분홍 촛대가 흰 케이크를 밝힌다.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지구의 나이는 짧고 저 멀리서 보면 한 점에도 미치지도 않는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일, 주어진 역량을 다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울음바다에서 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울음의 의미도 모르는 이 다만 소주만 그리웠으니까, 함께 간 동생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술 석 잔을 마셨다. 일어선다고 해서 일도 없었지만, 자리를 벗고 다시 내 머무는 곳으로 와야 했다.
우선 백장미와 창백을 생각한다. 속은 검정인데 아직 풀어헤치지 않는 상태가 백장미라면 무언가 풀어질 듯한 상태가 창백한 얼굴이 아닐까. 백장미가 각종 건축자재로 뒤엉킨 앞마당이라면 창백은 무슨 설계도처럼 조직을 이끄는 역동성으로 닿는다. 죽음에 이르면 창백하니까, 창백하다는 말이 좋다. 그것은 해맑다는 것과 거리는 멀지만 멀다고 해서 그리 멀지는 않고 잡스러움이 없어 깨끗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한 톨의 소금도 집어 먹지 않고 싱겁게 웃는다. 백색의 결정체이자 시 품의 품행은 높고 탐욕은 없는 상태니까. 늘 검은 입을 품고 살지만, 그늘은 그늘이 아니고 가난은 가난이 아니기를 얼마나 바라며 살았던가! 오늘도 붉게 핀 장미를 끌어안으며 이 무서운 꽃밭에서 옛날은 가고 더는 옛날이 아니기를 양팔 벌려 투석해 본다. 진정한 당신이 오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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