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과 어머니/ 이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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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250124)
눈사람과 어머니/ 이둘임
눈이 오면 나는 눈사람에게 8자와 八자를 부여한다
눈이 펑펑 온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다
눈을 뭉친다 어머니 한숨도 함께 뭉친다
묵은 응어리 같지만 세제처럼 녹아내린다
당신이라는 풍경만으로도 든든한데
말없이 서 있는 눈사람
내 곁에서 조금씩 녹으며 한쪽으로 기울어진 눈, 사람
언제고 지나온 길을 다 지워버리고
쓸쓸히 사라질 것을 예감하는 눈사람
뭉쳐진 동그라미 두 개를 세워 포개어 보지만
8을 거꾸로 해도 八자는 바뀌지 않는 눈사람
오늘도 그리움의 적설량을 재며
만들고 싶은 눈사람
사라진 눈사람이 있던 그 자리,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우두커니 떨어진 눈 코 입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얼굴 하나 표정 하나 당신의 얼굴이 온전히 떠오를 때까지
녹아버린 심장을 찾는다
(시감상)
눈사람은 해가 뜨면 녹는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삶이 다한다. 시간의 길고 짧음만 있을 뿐. 눈사람은 따듯하다. 차가운 눈으로 만들었지만 포근하다. 당신이라는 풍경만으로도 든든한 어머니. 눈사람을 보면 사라질, 혹은 사라진 어머니를 떠올리는 시인의 심성이 곱다. 겨울마다 그리움의 적설량이 늘어난다. 펑펑 눈이 올수록 사무치는 그리움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어 본다. 저기 저 앞에 내 어머니가 하얗고 둥근 얼굴로 웃고 계신다. 그때처럼 조금만 지나면 녹아 없어질 실루엣들. 올해는 눈이 많이 오면 좋겠다. 언젠가는 내 그리움도 사라지겠지만 그리워할 수 있을 때 한없이 그리워하고 싶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이둘임프로필)
모던 포엠 추천작품상, 사충신 의병 문학상 외 다수 수상, 시집 (우리 손 흔들어 볼까요)(광화문 아리아) 외 공저 다수
이둘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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