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라푼젤 /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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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라푼젤 / 오 늘
쉴만한 집은 너무나 멀어요
나의 폐허로 오세요 먹다 남은 비둘기와 젖은 머리카락으로 더러운 발을 닦아드릴게요 소리 내는 법을 잊었나요 내 눈물도 웃음도 소리가 없어요 그러니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한 사람이 들었던 이 자리, 봄이 만발하고 소란이 무성해도 폐허라 부를래요
붉은 거미는 제 몸을 찢고, 숨이 흩어질 때마다 당신도 뭉개질 테지만 불을 켜면 뭉쳐 있던 쓸쓸이 한꺼번에 웅성거리겠지만 당신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슬픔으로 버티세요 조금씩 녹여 먹은 슬픔으로 여기까지 걸어온 길을 잊으세요 이를 드러낸 저 개를 보면 두려움이 온몸 속을 기어다니겠죠 그래도 잊어요 시간은 잊은 만큼 지나가고 잊지 않으면 어제의 어제가 반복될 뿐이에요 알잖아요 헤픈 기억은 어둠을 타고 끊임없이 타오른다는 거요
꽃은 그쳤지만 오늘도 일용할 죽음을 얻기 위해 두 손을 내밀어요
부끄럼도 없이
[얼기설기]
신데렐라는 <재투성이 아가씨>란 뜻이고 백설공주는 <눈처럼 하얀 소녀>를 가리킨다. 라푼젤은 초롱꽃 종류의 꽃 이름이다. 마녀의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이름이다. 라푼젤은 원래 마녀가 지정해 준 탑 안에서 사는 금발머리 소녀인데 시인은 나도 모르게 지하의 세계로 데려와 버렸다. 시에서 한 사람이 들었던 폐허가 라푼젤 자신인지 아님 자신이 사랑한 눈먼 왕자님을 말하는 것인지 아님 자신의 탑에 갇힌 모든 인간 인지도 모르겠다. 탑과 지하의 동일성은 모든 것을 가두어 버리는 자신만의 어둠 속으로 기어든다는 것. 헤픈 기억. 창백한 기억. 허락받지 않은 기억. 너와 나의 터무니없는 오해의 기억........
난 오늘 터무니없이 부끄럽지 않은 어둠의 기억을 몰아내고자 탑에서 지하에서 날카로운 라푼젤의 눈빛을 하고 있다. 흔한 동화처럼 왕자의 구원도 아닌 스스로 족쇄를 푼 변화를 향한 자유의 몸짓을 향해.......
죽지 않을 것이다 나의 라푼젤.
댓글목록
崇烏님의 댓글
그래도 잠시 쉬어갈 수 있어 좋으네요. 젖은 머리카락처럼 검은 수렁에서 어떤 날개와 같은 마음의 평화, 비둘기처럼요. 내가 날지 못한 건 아직도 더러운 발 때문은 아닐까요. 미처 생각지 못한 봄은 아니었는지 말입니다. 무성해도 무성하리만큼 폐허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거미줄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영롱한 ‘맑음’의 한 잔
드리키고 깨끗이 잊을 수만 있다면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영원한 죽음을 기대할 수 있다면 부끄럼도 없이 말입니다.
좋은 시에 시원한 단술과도 같은 누님의 말씀도 곁들어 읽으니 잠시나마 위안을 찾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숙님의 댓글
넘 반가습니다 숭오님 ~~^^ 가끔 들러서 시인님을 숭오님을 찾았어요 다시 글을 올리시는지 , 잘 지내고 계시지 궁금하기도 하고....
오늘 드디어 숭오님을 만났네요~~ 글도 올려주시고 자주 들러 주세요. 누님이란 말이 넘 좋기도 하고 숭오님 글도 너무 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돌돌 말아 둘테니 언제든 숭오 시인님으로 돌아와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