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섬 /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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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섬 / 정일근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서로 바라보고 있다고 믿었던 옛날에도
나는 그대 뒤편의 뭍을
그대는 내 뒤편의 먼 바다를
아득히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섬이다
그대는 아직 내릴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저녁 바다 갈매기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내 밤은 오고 모두 아프게 사무칠 것이다.
(시해설 : 권영준 시인)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노래한 정현종 시인의 시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섬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환상을 심어주기에 훌륭한 상징이다. 우리 주변에 떠다니는 수많은 섬(타인)들은 제각각 자기만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미지의 세계인데, 쉬 가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동경의 세계에 맞닿아 있다.
멀리 보이는 것이 아름답다. 이 시의 '저녁 갈매기'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잘 알고 있기나 한 듯, 주변을 맴돌기만 할뿐 쉽사리 섬에 정박하지 못한다. 실제 섬의 세계는 생각만큼 아름다운 시간을 그에게 안겨주지 않을 공산이 크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바다지만 그것은 실제 허공에 불과한 것이며, 동경은 동경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생활에서는 '나는 그대 뒤편의 뭍을, 그대는 내 뒤편의 먼 바다를' 보며 시선을 다른 세계로 옮겨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설이기만 하며 삶의 밤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내 밤이 오고 아프게' 사무칠텐데, 기다리기만 하는 '쓸쓸한 섬'과 떠돌기만 하는 '저녁 갈매기'는 늙어가는 것 외에는 할 것이 별로 없다. 그대, '아직 내릴 곳을 찾지 못한' 나그네라면, 손짓하는 섬(타인) 하나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는지. 그 섬에 나의 환상적인 피앙세가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
(시감상)
불면증을 호소하는 아내가 내 곁에 잠들어 있다. 아내를 도와주고 싶지만 불면의 원인을 나만의 짐작으로 추정하는 것은 안개의 미혹 같아 불화를 동반할 수 있겠다 오늘 아침 아내가 깰 때까지 어느 시인의 청동염소처럼 나는 아내 곁을 지키는 불멸의 파수꾼이다.
(시인프로필)
정일근 시인 / 1958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 국어과 졸업. 1984년 《실천문학》등단. 1985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처용의 도시』『경주 남산』『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오른손잡이의 슬픔』『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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