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와 잉 사이 /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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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게와 잉 사이 / 이원규
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꼭 겁나게와 잉 사이로 온다
가령 섬진강변의 마고실이나
용두리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어쩌다 리어카를 살짝만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조깐 씨알이 백힐 이야글 허씨요
지난 봄 잠시 다툰 일을 얘기하면서도
성님, 그라고봉께 겁나게 세월이 흘렀구마잉!
궂은 일 좋은 일도 겁나게와 잉 사이
여름 모기 잡는 잠자리 떼가 낮게 날아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날고
텔레비전 인간극장을 보다가도 금세
새끼들이 짜아내서 우짜까이잉! 눈물 훔치는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
허공에라도 비문을 쓴다면 꼭 이렇게 쓰고 싶다
그라제, 겁나게 좋았지라잉!
(감상)
어둠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뒤척이는 밤
문득 자리끼처럼 머리맡에 스치는
언젠가 시인의 다큐에서
시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말,
불식(不識)
아는 것도 하나 없는 내가 개뿔, 뭐 그리 잘났다고
시궁창 같은 주둥아리가 껌처럼 달라붙은 손끝으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참 많이도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명치를 꾹꾹 찌르는 죄목들
어둠 속에 호얏불처럼 핀다
그라제,
시인이 고해등을 밝힌 겁나게와 잉 사이
엎드려 낱낱이 죄를 고백하는 밤,
교수형일까?
화형일까?
죄 묻힌 손끝이 달달거린다
(이원규 시인프로필)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닉네임: 낙장불입. 지리산 시인, 발로 쓴 편지를 띄우는 만행의 구도자,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환경 운동가, 모터사이클 라이더. 과거 홍성광업소 막장 후산부, 노동해방문학 창작실장, 한국작가회의(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중앙일보 및 월간중앙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결국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지리산. 입산한 지 11년째다. 지리산 지킴이를 자처하며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버림으로써 가벼워지고 비움으로써 여유로워지는 삶의 한 경지를 이룬 듯하다. 쉬지 않고 걷고 걸어 손이 아닌 발로 시와 편지를 쓰는 그는 지금도 ‘대운하 건설’이라는 망령을 떨치기 위해 남도 어느 강 길을 걷고 있다. 1984년 '월간문학' 과 89년 '실천문학' 을 통해 시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등과 산문집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벙어리달빛' 등을 펴냈다. 제16회 신동엽 창작상과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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