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 / 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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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848회 작성일 20-12-21 12:35본문
[조세금융신문 "양현근 시인의 詩 감상" 2018.11.21]
징
박정원
누가 나를 제대로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멍울 진 가슴 한복판에 명중해야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는데
오늘도 나는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기고야 만다
징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모가지로 매달린 채
녹슨 밥을 먹으면서
[감상]
징소리는 제 몸의 상처가 깊을수록
가슴속에서 길어 올린 소리로 멀리 퍼져나간다
상처 없이 완성되는 삶이 어디 있으랴
징채도 한 번 제대로 못잡고, 그렇다고
목청껏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붉은 징 같은 삶이 곧 서민들의 삶 아닐까 싶다
언젠가 가슴 한 복판에 명중하는 징소리를
꿈꾸며 오늘도 처마 밑에 쭈그려 앉는다
(양현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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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순례자님의 댓글
순례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징채를 잡아 벼르고 벼르던 한 방을 먹이거나
찡하게 맞아 마음껏 울어 본다 하더라도
남는 것은 결국 공허 뿐일지도 모르지요.
그 공허가 두려워서 결행을 미루며 기다리는 것,
징이 울리고 나면 더 할 일이 없을 것임이 두려워지는 것,
그게 우리가 사는 모습일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