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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시와 반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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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92회 작성일 18-10-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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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반기 시와반시신인상 당선작 _ 윤선, 박윤우

 

 

덕수궁 돌담길이 문장이었으면 (4)

 

   윤 선

 

 

 

깃을 세운 셔츠가 몸의 자세를 부른다

 

선글라스에 감춰진 사연들이 유월과 칠월 사이를 걷는다

시간을 뒷걸음질한 미술관 지붕

푸른 나무는 아래로 자란다

그림 속을 유영하는 사람들과 미술관을 걷는 사람 사이

나를 잡아당겨 봉긋한 다리 하나 만든다

서로의 간격을 눈빛으로 고누며

훌쩍 뛰어넘은 속도

 

캡슐은 서서히 열리고

서툰 걸음으로 건너온 날들

그림 위에 떨며 오래 머문다

시간은 그늘을 갉아먹고

석조전 바닥을 훑는다

우리는 어디서든 손을 뻗어 지문을 붙잡고

손바닥을 파헤치며 내부를 탐한다

 

휘어진 소나무 사이로 입김이 전해진다

발에 채이는 기억을 주우며

타오르던 꿈은 오늘도 유효하다

디아스포라의 갈피에 흔들리던 울음들 하나둘 일어서고

담을 넘은 광대싸리나무 그림자가 머리를 두르고

언제 흘러내릴지 모를 뒹구는 낱말들을 끌어안고

출렁 걷고 또 걷는다

 

...................

 


 

수선화는 피었지만 난 쓸쓸해요

 


 

그래봤자 손바닥 안인 걸요. 우리는 손끝에 서있는 거예요

까맣게 뚫린 바스키야의 헝클어진 몰입처럼

가슴이 혼곤해질 때까지 우지끈 손끝을 모아요

움켜잡아요

퍼덕이던 수탉의 뭉클한 목덜미를

날뛰던 직벽의 바람을

혼곤하던 오후의 주홍 햇볕을

불안의 벼랑으로 골려주던 불면의 채찍을

꽉 잡았나요

이제 잘 섞이도록 오래오래 주물러요

 

손끝은 더 이상 전진 없는 갈망, 혹 벼랑 끝

절벽이거든요 절벽에 부딪쳐 보셨나요 열린 동공을 눈꺼풀로 숨긴

싸아한 뒷덜미의 냉기에 멱살을 잡혀 보셨나요

아랫도리가 저릿하도록 전율을 껴입고

펄럭이며 흔들려 보셨나요.

등골에 내리는 오싹한 식은땀이

왜 벼랑 끝을 사모하는지

발을 동동 굴리는 구름판의 아우라를 애정하는지

걷어차 버리고 싶은 시간의 망루를 이토록 끌고 왔는지

이제 돌아서 걸어 볼게요 내 등을 좀 밀어줘요

 

한길로 가다 보면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모두 길 위에 스며들도록 사뿐사뿐 걸어야겠어요

이미 뒤뚱거렸던 발걸음들은 신발만 바꾸면 되니까

신발 끈을 졸라매야죠

푸른빛 안개를 서서히 몸속으로 당기며

생각을 굴리고 문장을 탄탄히 조여 울퉁불퉁한 풍경의 안경을 눈에 끼고

자주 손차양을 해야 해요

! 손가락이 접히도록 엄지에서 약지까지 힘을 넣도록

단단히 두 무릎을 꿇어도 좋겠어요 치열하게 부딪쳐야 하거든요

손아귀가 힘이 세서 우리는 각자 휘파람을 불면서 행군하며 만날 거예요

자 그러니 손가락 끝까지 힘을 넣어봐요

 

 


기억의 모듈은 어디로 향하는지

 

 


여기에서 자라는 문장들이 걸어 나와 길을 잃고 바람에 간당간당 나부끼는 줄장미가 머리를 칩니다 쓰러진 낱말들을 온전히 일으켜 세우려면 저 장미는 몇 번 피고 져야 할까요 스타카토로 이어지는 기억들을 모아 남루한 옷자락으로 싸요 장미는 바람에 꽃잎을 뱉어내고 꽃잎이 흘러내리는 방향으로 자꾸 늘어져요 이제 부유하는 말들은 주머니 속에 모아 삼켜야겠어요

 

손에 힘껏 말아 쥔 단어 몇 장, 한 송이 꽃을 이루려면 헝클어진 마음을 주워 모아 향기를 만들어요 서로 섞이는 일은 더 나은 문장을 꿈꾸죠 발끝에서부터 달아나던 것들을 서서히 부여잡고 부딪치고 갇힌 것들 차례로 줄을 세워야 해요 장미 송이는 줄을 타고 뻗어 올라요 당신의 발음과 생각과 일탈과 질서가 한꺼번에 꽃을 피워내요

기억의 모듈은 어디로 향하는지 몰라 찡그릴 필요는 없어요 당신은 온전합니까

 

코 고는 소리로 잠을 덧입습니다. 얼굴을 덮은 빽빽한 영어 활자가 당신의 몸을 기어다녀요 낮 동안 가꾼 모음을 쏟아 부어요 잠속에서 무수한 활자들이 방을 만들고 창을 높이 그려 넣고 문고리를 달아요 오늘만큼은 행복해지고 싶어 서류를 살짝 밀치고 열광을 발광처럼 머릿속으로 욱여넣고 한 줄의 문장을 건져내요 잠시 길을 잃을지도 몰라요 어디까지 작동했는지 서서히 밀려나가 떨어지고 말걸

 

⸺⸺⸺⸺⸺⸺⸺⸺

윤선 / 경북 의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18시와반시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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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 (4)

 

   박윤우

 


 

들어온 골목이 나가는 골목을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안 닿는 데를 긁으려고 억지로 팔을 꺾으면 거기, 공터를 견디는 공터가 있다

 

저녁은 공터의 전성기, 새떼들이 공중을 허물어 공터 한켠에 호두나무 새장을 만들고 있다 묵은 우유팩의 묵은 날짜 같은 상한 얼굴들이 꾸역꾸역 저녁을 엎지른다

 

헐거워진 몸을 네 발에 나눠 신은 개가 느릿느릿 공터를 가로지른다 과연 공터가 공터인 건, 공터가 한 번도 공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어서다

 

공터에 왜 아이들이 없지? 그 많던 돌멩이들이 다 어디로 굴러간 거야? 아무도 묻지 않는 그곳이라는 저녁, 빨랫줄의 빨래가 마르듯이 공터가 마르면서

 

침묵하는 서랍이다가, 무표정한 유리창이다가, 필사적으로 공터가 되려는 공터가 처음 보는 이의 등처럼 어둑어둑 저문다

 

 


아주 멀고 긴 잠깐

 


 

104동 꼭대기 층 베란다에서 한 뼘쯤 바깥, 누가 공중에 떠 있다

 

무슨 말을 꺼낼 때 누가, 있잖아…… 하다 잠깐 멈춘 입술 모양처럼 누가 떠 있는 거다

잔디 깎던 인부들이 밥 먹으러 간 뒤여서 예초기가 잠시 쉬는 중이었다

 

우그러졌던 공중이 쫙, 아래로 펴졌다

베란다에서 공중으로, 공중에서 땅으로 주소를 고쳐 쓰는 그, 그는 몸으로 몸의 속도를 넘고 있는 거였다

 

폴리스라인이 쳐졌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경찰이 베란다의 공모가 의심스럽다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에 남은 베란다의 위험한 알리바이

 

저녁을 먹고 물소가죽 소파에 기대 리모컨을 누르자 땅바닥에 엎드렸던 흰 스프레이 테두리가 TV프로에 희고 납작하게 출연했다

 

미루고 있지만 결국은 죽을 사람, 죽음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다는 사람들이 이미 죽어 더는 죽을 수 없는 사람에 관해 예의 바르게 침을 튀겼다

 

채널을 돌리자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나도 따라 웃었다 웃다가 내가 왜 웃지? 생각하는데 누가 나를 탁, 닫는다

 

닫힌 채로 바라본 건너편 거기, 누가 또 떠 있다

저건, 내가 분명하다

 

아주 멀고 긴 잠깐, 아침 햇살에 갇혀 부유하는 식탁 위 먼지처럼

 

 


서랍 정리

 


 

외짝으로 돌아다니는 양말은 쪽팔리니까 쪽 팔리는 칸에, 큰 마음먹고 장만한 내 가죽 재킷과 낯간지러운 말은 자주 입으니까 손닿는 데 챙긴다

 

오줌 멀리 쏘기 시합을 하다 적신 민무늬 팬티, 저게 왜 여태 남았나, 감춰야 손해를 안 보는 게 표정이니까, 표정 밑에 묻었다 혼자 꺼내 보고 혼자 웃어야겠다

 

너 키스해 봤니? 한때는 갓 쪼갠 육송 장작 같은 입술이었다

영양가 없는 모임에서 만난 영양가 없는 여자 미자, 사는 꼴이 이게 뭐냐며 아침저녁으로 들이대는 저 입술은 늘 젖어 있으니까 베란다에 널어야겠다

 

횃대, 우물, 나뭇가지, 모래무지…… 선생님 입술을 쳐다보며 꾹꾹 눌러 썼던 초등학교 일학년 때의 받아쓰기 공책은?

 

그처럼 신기하던 말들이 티백 같은 네 젖가슴처럼 납작해졌다. 웃겨 죽겠다를 우껴주께따로 써도 하나도 우습지 않은 말들, 쌓인 말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서랍이 쾅 닫는다

 

네가 선물로 사다 준 폴란드 기병대의 찢어진 깃발과 내가 인사동에서 주워 온 새벽 순라군이 쳤다는 꽹과리채가 무슨 일 났냐며 두리번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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