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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문학동네신인상 시 당선작 / 변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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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71회 작성일 21-11-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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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문학동네신인상 시 당선작 / 변윤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가만히 동호회 외 


  변운제


 

가만히 멈춰라.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시작된 동호회.


가만히 멈추는 건 무엇인가요 멈추는 것과 가만히 멈춤은 무슨 차이일까요.

먼지떨이를 쓸어내리며 생각했습니다.

수백 갈래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고민했습니다. 먼지떨이로 사람을 때리면 회초리가 되고요. 먼지떨이로 반찬을 집으면 젓가락이 되는데.

가만히 멈추면 가만히가 무엇이 되지요?

 

요를 펴면서도 생각했어요.

이불로 나를 돌돌 말아 쥐는 사람아. 김밥 놀이를 시키며 내 숨을 사라지게 하는 사람아. 어머나.

오이의 기분은 희박하구나? 그래서 안쪽이 창백하구나.


그대여.

내게 가만히를 명령한 그대야말로 가만히의 명수.

타르트를 파는 저 세탁소를 보아요.

가루가 떨어져요. 옷걸이엔 밀가루 포대가 잔뜩 걸려 있답니다. 세제 대신 흰 가루 쏟아지고.


왜 우리는 항상 가는 곳만 가야 하나요?

이 세탁소에 온 손님은 아무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새하얀 건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당신만이 매일 저 세탁소에 옷을 맡겨요. 검고 푸른 옷마저 희게 만드는 저 세탁소를.

완벽한 하얀색을.

가만히는 그렇게 꾸준한 일. 늘 하는 것을 늘상 반복하는 일. 그런데 제게도 가만히라니요?


가만히를 일생 기르면서 가만히를 가만히 가르치는 당신.

제자리에 멈춰 돌아가는 세탁기 군단.


진정한 의미의 세탁에 대해.

당신은 알고 있었고.

당신이 찾아온 옷가지는 타르트가 되었고. 포도 향이 나고. 어떨 땐 빳빳한 쿠키의 감촉이 제 목젖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가만히 있어.

그 말이 제 유년을 하얗게 탈색하는데.

발버둥.

토악질. 새하얀 구토물의 겨울. 가만히 동호회가 발버둥으로 완성되고야 마는데.


가만히에게 편지를 씁니다.

가만히야.

나는 한 번도 너 같은 종류의 가만히는 원한 적 없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한 가만히 동호회.

가만히 부르는 순간 가만히 있던 그림자가 떨어져나가고.

제 털을 가만히 기르고 있던 먼지떨이가 부서져버리고.

벽에 가만히 스며들고 있던 내 등이 내 척추에서 떨어져나가서.

사방이 저로 가득한.

동호회라기보다는 가만히 의회에 가까워집니다. 가만히로 구성된 제국일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가만히 다가오는 비명에 대해.

가만히 나라의 폭군으로서 명령합니다.


꺼져.

가만히 꺼져.

세상 모두가 일제히 발버둥친다면, 진정한 가만히가 완성되는 것?


시속 칠백 킬로미터로 달아나는 가만히 국민들.

도저히.

도저히.

결정적으로 나는 가만히 있게 되는 겁니다.


코끼리가 없는 코끼리 유치원이나 마찬가지예요.

코끼리가 들어오는 순간 알게 되는 거죠.

우리가 무엇을 동경했는지.

육중한 네 다리와.

유치원을 기둥째 뿌리 뽑는 압도적인 코.

우리 귀여움이 바라왔던 파괴적이고 절대적인 힘.


그대여.

가만히 멈추라고요?

가만히야.

나는 나의 가만히를 끌어안습니다.

가만히의 기다란 코가 내 목을 살며시 조릅니다.

, 가만히.

그리하여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가만히 동호회.

 


인도에서 온 아디타

 

 냉장고에 넣은 여권은 기한이 줄어들지 않는다 믿는다. 아디타의 여권은 늘 차가운 곳에 케밥을 파는 그는 자신을 터키 사람이라 소개한다. 며칠째 팔리지 않는 양고기에 기름을 덧바르면서. 화전하는 걸 보면서.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건 편지. 수증기가 올라오자 종이 접히는 소리. 당신 불법으로 온 거 맞잖아. 유통기한 지난 거라고. 배탈이 났다는 남자가 아디타의 뺨을 갈겼다. 두어 번 더 후려갈겼다. 노래를 부르며 양고기에 기름을 바르는 아디타. 기름기름. 고기고기.

 

 

안부의 나라

 

손님이 정말 많은 시장이었대요. 아무도 없어요. 어떤 날엔 제 가게에만 비가 내려요. 일인용 먹구름, 일인용 우울, 일인용 불법 체류, 일인용 범법자.

 

단 한 명도 앉힐 수 없는 비좁은 가게. 흰 앞치마를 입고 행주를 위로했어요. 돼지고기 전단지를 위로했고. 뚝뚝 떨어지는 기름방울을 위로했고. 위로를 위로했습니다.

 

제가 부친 돈은 잘 갔나요. 전화를 걸면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제 소식을 걱정하기엔 그곳이 너무 행복해져서. 찬란이 영영 안부가 되어서.

 

 

일자리 소개소의 창가

 

우표로 쓰기에 적합한 증명사진들. 시장 골목마다 내가 데려다놓은 체류자들. 휴지에 항공권을 그리고 선물해주었다.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한 사람은 앉아서 잠들었다. 힐을 벗겨주었고. 패딩을 벗겨주었고. 또각또각 그 사람의 구두가 그자를 버리고 가는 걸 보았다. 비행기는 대체로 어항 속을 날고 있다.

 

 

대필

 

아디타는 돈을 많이 벌어요. (받아 적는 척한다.) 어제와 그제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어요. 눈 내리는 식혜 속을 함께 거닐고 싶어요. (ⵈⵈ) 오늘은 물론 항상 기분이 좋아요. 잘 안 보이던 눈도 제대로 보이고요 (그는 머뭇거린다.) 정말이에요. 제 걱정은 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에요.

 

 

소개소 창가엔 언제나 뿌연 안개. 제대로 쳐다보면 빼곡히 흰 우표가 붙은 창문. 걱정과 염려가 실질적으로 이곳의 눈을 가린다.

 

괜찮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속에 어두운 복도가 보이고. 괜찮습니다. 다시 들려오는 소리 속에 복도에 구멍이 뚫리고. 그 복도를 오려내는 건 빛나는 가위. 편지를 부치지 않는다.

 

 

유통기한

 

어느 날 세계지도가 그려진 거울이 배달되어왔다. 지우개로 가장 먼 나라부터 지우기 시작했다. 한 체류자가 그 거울을 냉장고에 집어넣으려 하는 것을 보았다. 말리지 않았다. 그들이 안타깝게 여겨질 때 그들을 더욱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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