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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 한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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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22회 작성일 21-11-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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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 한진우

 

혼자 하는 추모 3

 

 한진우

 

흰 벽에 머리를 대고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풀릴 때까지 직선으로 걷는 풍습이 있다

마음이 풀린 곳에 표시를 하고

하룻밤 만에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돌아오다가 끝난 사람도 있다


분노는 어떤 자세로 식어 있나

어디까지 걸었니?

(묻기 전에 걸어야지)


한 사람의 길을 루틴으로 만들면

잠시가 영원으로 변할 수 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에 닿아 보려는 염원은

스스로 물에 빠지는 선택지를 만들었다

물방울이 덜 튈수록 예쁜 다이빙의 모양

왕관 모양으로 퍼지는 밤 


창문을 보면 다들 입김을 한 번씩 꽂아 두고 갔다

추모의 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결국은 투명해지고 


풍경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에 시달린 창문과

외면하고 싶어지면 창문을 찾곤 하는 우리 


빙하가 사라지는 이유를

먼 나라 따뜻한 평지에서 생각해 본다 


직선거리를 재보면

누가 더 화가 났을까 비교하기 쉽겠지만


목격자는 하얀 대지뿐이었다


저 멀리서

숨을 오래 참는 사람이

간절함과 안간힘을

심해어에게 맡겨 놓고 올라왔다

평생 동안 쉴 숨의 절반만 가지고


식목일. 그렇게 불린 날에 올라왔었지

가슴이 뚫린 채로


온 동네 흙으로도 메꿀 수 없던 깊이

동네에 있지만 동네의 이해를 벗어난 깊이


덮으려 하지 말고 통째로 껴안아 보는 습관만이 따뜻했다

머리와 다리를 덮는 이불이 깨어날 때

가슴에 안겨 있는 것처럼


나도 몸에 깊이란 걸 만들어 보려고 모종삽을 샀다

첫 삽을 뜰 때 멀리서 축하 박수가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 다들 있었다니


물이 고여 있구나


잘린 다리가 흔적을 지우기 편한 것처럼

꽃을 그리는 사람이 언제부턴가 화병에 물만 그렸다

죽음을 투명하게 보려고

다들 유리병을 사 가는 건가


누가 들어오지 않았다길래

똑바로 걸었는데 그 앞은 녹았다는 말


그것은 존재하는 걸까

그것은 발견되는 걸까


흰 벽에 머리를 대면

멀리서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자세가

엉킨 뿌리와 닮아 있다고

자기가 무얼 심는지도 모르는데


다 자라고 나서 눈을 떴을 때

여럿인 자신을 보고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새장과 벽장*

 

 

깃털을 갈아입을 곳이 마땅찮은 그에게

벽장을 내어 줬다

그는 내게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깃 하나를 주고 펜으로 쓰라고 했다


자긴 하늘에서 뚜렷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형 항공기들에게 자리를 뺏겨

어떤 날은 걷는 시간이 더 많다는 말을 하면서

최근 한 화가의 개인전을 보고 감명받았다고 했다


새들이 벽화 안에 무리 지어 갇혀 있었는데

밖에 있는 새 한 마리가 발톱을 박고 부리를 박고

필사적으로 수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그림에서는 여윈 새 한 마리가 입에 새장을 물고

고개를 박고 있었다


그런데 집이 잠겨 있어 들어가진 못했다

새장에 새를 반기지 않는 공허가 가득했다


그는 작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의도가 있나요?

새는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자유로운 존재였어요

새장에서 새를 빼고

나무에서 새를 빼면 새는 뭐가 되는지 궁금했어요


저처럼 되지 않을까요

그는 나한테 빌린 옷이 깃털을 가려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집까지 날아오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내 호의가 무거워서 그럴 수 없었다


새장은 주로 열려 있다

주로 베란다에 있고

때문에 바깥과 집을 연결하는 손잡이 같다


새는 둘 사이를 오가며 자기가 안인지 밖인지 헷갈렸다

눈에 띄지 않게 어디 박혀 있고 싶다


그는 전시 마지막 주에 새 그림을 오래 쳐다봤다

그는 부리를 노크로 자주 사용했는데


노크는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면서

부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가 준 깃으로 마침표를 찍을 때

깃으로 그를 그릴 때


그는 지나가는 행인 같다


  *강주리 작가의 개인전의 작품

 

 

고시원

 

아픔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 해준다는 세계

너무 많은 것들이 기록되어 가는 중인데

정작 한 사람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거울이나 반려동물을 쳐다봤다


널브러진 바지 옆에 널브러진 상의

육체가 없는 옷에서도 사람의 냄새는 나서

방에서는 꽤나 많은 내가 번갈아 등장하고


나는 낯선 나와 같은 꿈을 덮고

일어나 깨면 누가 더 많이 자기 쪽으로 당겼는지 모른다

더 오들거리는 것은 언제나 나였으니


약속이라도 하듯 모두 아침에 화장실을 가고

비슷한 시간에 물을 소비하는

화장실 타일 같은 패턴


강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알람이 아니면

정오와 자정을 구분할 수 없는 구조


해가 들지 않는 방에서

나와 식물과 숫자가 번갈아 죽었다가 태어나


유리를 지나치지 못하는 얼굴

풍경보다 옅은 나를 먼저 찾으니까

눈동자를 내 보호자로 삼을 수밖에 없어서


부딪친 곳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통증보다 시선일 때가 많다


사람끼리 부딪쳤는데

한 명은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저기요,

한순간이나마 우린 겹쳐졌어요


이 커다란 도시에서 이러한 일은

대부분 유령처럼

 

 

 

, 그렇지만 노력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구체적인 지명의 어딘가

작동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자판기에서

흰 우유가 잠들어 있다


거미줄과 먼지로 잠시 유령인 척

나도 얼마간 침묵으로 동의하면

덜컥, 원하는 것을 쥘 수 있다


적당함을 모르는 것들이 흰 것을 온통 앗아 간 덕에

젖소 대신 자판기로 어린 시절을 연명했던 우리들


원망이 자라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추락하는 꿈을 꾸지 않아서가 아니라

몸이 하양을 추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흰 것이라도 사후 직전까지 재생되는 것과

단 한 번의 기회로 끝나는 것은 달랐기에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이빨을 박는 것은 칭찬하고

새치는 보기 싫어 뽑아 버리는 일


소화불량인 몸에서 검은 피를 솎아 내고 나서

기운이 허하다며 내온 흰죽으로 생기를 돌게 하는


순환

단 하나의 역할을 위해 태어난 것들을 애도하기 위해


나는 빨래 망을 들고 세탁기를 돌린다

흰 것은 흰 것끼리

같은 종을 따로 사육하는 것처럼


너무 하얀 이빨은 외려 입을 오므리게 만들었다


나이 든 이웃의 입술이 말려 들어가

홀홀거리는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안과 밖이 뒤집힌

건조대의 세계에서

사방으로 말라 영역을 잃어가는

단 하나의 얼룩


세탁기를 발명한 사람의 소망은

착색 없는 순수한 외로움이 아니었나


나이가 들수록 더 큰 목청으로 울 수 있는 게

비단 세탁기만은 아니지 않나

 

*한진우: 1994년 광주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중퇴, 현재 대한번역개발원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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