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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문학동네>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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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356회 작성일 16-10-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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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문학동네>신인상 당선작- 식물인간(외 4편) / 김정진

 

 

식물인간(외 4편)

 

   김정진

 


 

   꿈에서 나는 꽃을 물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주변은 온통 제 몸을 날리는 것들로 가득하고 나도 중력을 거부한 이름들과 나란히 떠다니고 싶어집니다 벼락을 맞은 나무의 키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나도 돌이켜 살고 싶어 죽은 나무 구멍에 머리를 들이밀고 숨을 쉬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삶을 뒤집은 건 내가 아니라 나무였고 나는 아직도 그 안에서 나던 향기를 생각하는 중입니다 홀로 남은 나무마저 어느 순간 몸을 날리게 될까봐 나는 꽃이 떨어진 자리마다 우표를 붙여주었습니다 말 못할 슬픔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이 식물로 다시 태어난다는데 또다시 아프게 죽은 식물은 무엇으로 태어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내 안에 여전히라고 부를 만한 방이 남아 있다면 죽은 나무 산 나무 그 방 안에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휘파람새는 꽃을 따려 손을 내미는 소년의 손가락을 물고 날아갑니다 손가락을 잃은 소년은 자신의 손가락보다 새였던 꽃을 더 그리워하다 마침내는 제 손에 꽃을 피우고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 늙은 코끼리 한 마리가 나무 밑에 몸을 뉘었고 코끼리는 시든 식물의 빛깔로 말라갔습니다 나무는 코끼리를 먹어치우고 다시 걸음마를 연습하는 중입니다 손가락을 문 새가 있어 휘파람으로 부르려는데 입을 틀어막는 섬뜩함에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내가 물고 있는 꽃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낙엽들이 살을 베며 지나가고 이제 민들레를 불던 내 입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미러링


 

 

왼손잡이던 사람이 오른손잡이가 된 후에도
남아 있는 왼손의 흔적처럼

 

내가 싫어하던 여름은
네가 좋아하던 여름
이를테면

 

내가 해가 뜨기 전의 하늘이라면
너는 해가 진 후의 하늘

 

저녁일까 새벽일까
왼손 오른손 셈을 하다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던 구름들
옛사람들은 이것을 병아리 감별사처럼 구별했겠지

 

한 번도 왼손을 써본 적 없는 사람이
왼손을 먼저 내밀기 시작했다면
그에겐 이제 오른손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될까

 

왼손만으로 내 목을 조르며
숨이 넘어가기 전 치솟는 쾌감에 한 번은
반쯤 사는 기분을 느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올려다보던 여름의 수심水深
정오와 자정 중 어느 것이 더 깊어?
해가 뜨기 전의 하늘을 해가 진 후의 하늘처럼 날아가는 외눈박이새의 활공

 

네가 밤이 되어갈 무렵 나는 새벽이 되다가
무분별도 하루이틀이라고 밤을 지새고도 두 눈에 비춰보던 양손
중앙정원을 반대 방향으로 걷는 두 사람이
중간에서 만나는 그 지점

 

서로 지나가던 순간이 있었다
해가 뜨기 전의 하늘은 세어본 적이 있는 마주침이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어제 벽에 붙어 있던 거미가 오늘도 그대로 있다
자신이 거미가 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어제는 만났지만 오늘은 만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그게 그거라고 말하는 너에게 그거는 그거고
이거는 이거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에 실패한다

 

구석이 점점 어두워져도 거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거미가 되기 전의 삶을 떠올려보는 것일까 그와 삶을
바꿔치기한 무엇은 먼지 자욱한 실내에 엉거주춤 서 있을까
한 번을 바뀌지 않아도 적응하기 어려운 몸
네가 되어보는 상상을 하고 알코올이 되는 상상을 한다

 

오늘 자전거를 끌고 천변을 지나간 사람이 내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줄이 내내 우리의 뒤로 늘어뜨려지고 잠시
뒤처진 사람의 발이 앞서간 사람의 것에 걸린다
그가 일으킨 바람이 사그라지기도 전
다른 바람이 와서 그것을 지우듯이

 

어제 벽에 붙어 있던 거미가 오늘은 안 보인다
그런 믿음을 갖는다

 

너의 그때가 나에겐 지금
거미줄에 걸린 나방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날지 못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죽음을 예감하고 수많은 지금이 걸어온다

 

 

 

논픽션

 

 


중간까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남자라는 걸
소설의 중간까지 읽고서야 알았다
일생이 절반에 이르기까지 여자였던 남자는
책장이 넘어가듯 단순하게 생을 바꿔버리는데
남자가 된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가사 없는 노래를 불러준다

 

새벽은 금세 저물어 첫차는 다가오고

 

그가 된 그녀는 그란 사람 말도 없이 떠나버렸나
파쇄기에 갈려버린 마음을 안고 금 하나를 넘지 못해 애만 태우다가
한 곡도 다 못 맺고서 동면冬眠을 간다
그녀였던 그는 그녀가 간 줄 모르고 이불을 개다
그날 아침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쌓이기만 하고 녹지 않는 눈이었다

 

다시 펼쳐보아도 이미 이불 속에 그녀는 없고
돌아갔어도 덮어쓰기 된 생이 끝 간 데 없어 여자였던 남자는
원래 남자였던 남자로 그녀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
모두가 떠났고 모두가 남겨진 소설에서
종종 그는 그녀를 떠올렸고 중간의 중간까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그인 줄 알았건만
덮고 나면 그마저도 흐릿해지는 오리무중의 폭설
감감한 마음을 만져보다가 네가 머리에 쌓인 것을 털며 들어온다

 

먼 사람들은 모두 잘 지내지 않으냐

 


 

목성

 

 


미안하지만 미안할 수 없는
무중력 속의 죄책감
목성에 살았더라면
지구를 두 개는 넣을 수 있는 눈을 갖고서
배가 아니라 섬 하나쯤 가라앉더라도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

 

발음은 무뎌지고 역사는 두꺼워지겠지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
항상 벽에 기대어 길어지는 덩굴의 생존
기우는 해만큼 그림자 속 잎사귀는 점점 뾰족해진다
꼿꼿이 선 실어증 환자가 인내 끝에
……해, 라는 말을 툭 떨어뜨릴 때

 

종소리가 사소해지는 것이 들립니까 더 사소해지고 사소해질 때까지
작고 작은 종이를 접는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이지 않는 종이를 손바닥 위에 얹으면
보인다 하늘 끝으로 날려보낸 수백 개의 연
뜨거운 물에 찬물을 조금씩 섞어 미지근한 물을 만들듯이
방 속의 방 속의 방 안으로 들어가야 겨우 실감할 수 있는
무중력의 포근한 질감이 있다
어떤 죄를 지어야 무거워질 수 있을까 무엇을 더
해야 뭉툭해질 수 있나

 

네게 산 위에 뜬 목성을 알려주며
더이상의 후회를 없애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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