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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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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55회 작성일 22-11-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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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화된 이미지를 관조觀照를 바탕으로 재창조하는 추론推論의 서설序說

- 김성신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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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현대시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논하게 되는 주제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에 대한 권혁웅 시인의 말을 빌리면 이미지는 언어적 이미지, 시각적 이미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정의되며 구현 방식을 감각의 운동 방식에 따라 이동, 집중, 통일, 즉물화, 병합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고 했다. 보이는 풍경을 이미지라고 전제했을 때 보이는 이미지 너머의 것, 이미지가 가진 고유의 형상이 아닌,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이미지의 배경을 추론하는 것이 어쩌면 궁극적으로 현대시가 추구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이미지의 재창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상을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과 현상이 현상이라는 결계를 지나 통찰의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면 그것이 성찰이며 구도자에게 있어 깨달음이라는 결과물을 주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는 어느 한 방향으로 제시된 기술적 언술 행위가 아닌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거나 생각하거나 사념하거나 할 수 있는 입체적인 독백의 논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시에서 이미지는 사물의 동질성을 질료로 하여 인상과 표현 사이에서 발화를 주도하는 상상력을 기초로 탄생하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발화를 시적 환기 또는 시적 발견이라고 가정할 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인지하고 그 바탕에서 생각의 자유를 획득하여 단층의 범위를 넓혀 나가야 하는 것을 이미지화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시의 주류는 이러한 이미지화하는 것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요약하면 1차원의 방정식만으로 문제 풀이가 되는 것을 구태여 고차 방정식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일종의 자기변명성 당위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 노래 가사와 다른 점은 청각적인 부분보다는 시각적인 면이 크다. 눈으로 인지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뇌의 기능이 이미 즉물적이며 가시적인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쉬운 것은 쉽게, 어려운 것은 어렵게 저마다 가진 논리에 대입해 하나의 공간을 만들 때, 그 공간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 상상의 공간은 세상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나만의 골방(함석헌의 ‘골방’에서 일부 인용) 일 수 있고, 세상의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당위와 불균형의 세계도 될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하기에 이미지를 재창조한다는 것, 그것에 대한 추론 방법은 결국 관조觀照를 바탕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본다는 것. 현상을 정확하게 현상의 원초적인 像을 관찰하며 상에서 볼 수 없는 것을 감지해 내는 것이 인지적 관찰방법의 우선이며 상의 배경을 생각하고 추론하여 나만의 像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이미지론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것에서 기존 이상, 이하 혹은 심층의 다른 무엇을 재창조할 때 시는 생명력을 갖는다. 기표記標하는 것이다. 언어의 외적 형식을 두뇌에 각인하여 시인이 가진 감성과 느낌과 울림을 같은 박자로 동일시하여 또 다른 뇌 새김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 많은 시인이 있고 많은 시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시선으로, 같은 언술적 방법으로 시를 기표화한다면 시는 죽었다고 판정해야 한다. 그 같지만 다른 무엇을 형상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이미지화 하는 것이다. 풍경이 아닌 배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 아닌,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번에 처녀 출간하는 김성신 시인의 작품을 보고 (Review)를 부탁하는 전화를 받았다. 시집 제목이 독특하다.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세모 혹은, 네모가 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이 있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빠져나간다는 것은 시간적, 공간적 모두 해당하는 말이다. ‘지금’이라는 곳에서, ‘여기’라는 곳에서, ‘현재와 과거’라는 어쩌면 배타적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의미 부여가 다소 곤혹하게 느껴졌다. 일탈, 이탈, 도주, 감금, 해방, 자유 등등의 피상적인 논리는 제외하더라도 정신의 빠져나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으로 정독했다. 김성신의 시집은 논리주의자의 작품이 아니면서도 논리를 바탕으로 설득이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오래전 문장 주의 작가들의 문장인 듯하면서도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냈다. 서정시가 아니면서 바탕에 서정을 깔고 있다. 현대시라는 거창한 이름을 수식어로 붙여두고 거듭된 이미지의 재창조를 기반으로 하여 결국 우리 민족이 지닌 삶에 대한 恨의 근원적인 속성에 대하여 입체적으로 기술한다. 하나이면서 둘이기도 하고, 둘이면서 셋이기도 한 시인의 본성은 비록 그 기술적인 이미지론으로 인하여 가끔은 희석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완성형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그레이션』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질문들은 화자가 화자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동시에 삶에 던지는 항의성 메시지다.

제주는 태초부터 새콤한 감귤나무가 자라났나요?
새별오름에는 날마다 새 별이 떠오르나요?
질문할 때마다 엄마는 눈감고 젖이나 빨라고 했지만
그럴 때면, 나는 알아도 모르는 사람이 되죠 

『이미그레이션』부분 인용

중요한 것은 알아도 모르는 사람이다. 공감의 영역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그 공감에 비수를 꽂는 듯한 행간의 비수가 퍼렇다. 시퍼렇다. 『말』이라는 작품에서 보여주는 말의 의미가 이미지화되고 그 입체적인 이미지에 기교적 언술을 입힐 때 말은 말에서 말로의 진화를 이루어 낸다. 언어의 기표화라고 말해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 사이의 음소가 분절될 때
울적의 리듬은 박장대소와 굿거리장단에도 후렴을 맞추지
어디에도 가닿지 못한 묵음이 벽을 뚫고 울려 퍼지지
 
허공을 가로질러 바라보면 이 세상은 때로 질문들의 증명
먼 곳에 있는 것이, 가장 가까운 곳으로 숨 쉴 때
가로지르는 것이, 내 옆에 있었음으로
누군가 되물어도 입술을 깨물 뿐

『말』부분 인용

이 시집의 제목이 되는 시 한 편이 반갑게 보인다. 『드론』이라는 작품이다. /어떤 날은 동그랗게 날아야 나를 빠져나갈 수 있다. 여기에 시집 제목에서 감춘 단서 조항이 있다. ‘어떤 날’ ‘나를’이라는 단서조항으로 인해 시인의 인식 지점이 현실과 시간과 인식의 경계선상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 단편적인 현상에서 현상 너머가 소유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지적 예감을 승인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시는 완성되는 것이다. 모두에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그저 보는 것이다. 그 너머의 것을 보는 것은 경륜과 지식과 배움과 공부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관조를 바탕에 두고 깊은 상념의 강물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현대시가 진화하려면 송수권 시인의 말처럼 퇴행성 관습을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퇴행성 관습에 지배당하고 있다. 예를 들어 1에서 10까지 눈을 감고 센다고 할 때 1에서 5까지는 비교적 정확하게 1초라는 간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6을 넘어서면서 빨라지거나 늦어지기 시작한다. 단 10초도 정확하게 셀 수 없는 것이 시다. 엇박이 아닌, 정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旣 형상화된 이미지를 관조觀照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경계 너머의 것을 보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할 때 좋은 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며 문단의 진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김성신 시인의 작품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차주일 시인이 말했다. 서평은 주례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시인의 말이 정확한 말이다. 본질을 본질대로, 현상을 현상과 현상 너머의 것으로 소화하고 소개하는 것이 서평의 본질일 것이다. 아쉽지만 필자에게 허락된 지면이 너무 적어 김성신의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을 모두 리뷰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김성신 시인이 표방하고 주장하는 김성신 시의 미래는 밝다는 점을 강조한 것 같다. 필자가 주목해서 본 작품 한 편을 소개하며 Review를 맺는다. 김부회

드론
 
어떤 날은 동그랗게 날아야
나를 빠져나갈 수 있다
 
비자나무숲 새들도 내 그림자를 돌아가느라
울음이 한 박자 늦다
볕 쬐러 산양들이 떼로 몰려왔을 때
가는 눈 뜨고 주린 배 움켜쥐면
날아간다, 날기 위해 날아갈 뿐
 
왜 나는 것들은 꿈이 가벼울까
앉고 걷고 품어내는 것의 바람은
이마를 간질이기도 할 텐데,
 
어제는 닳은 무릎을 편다
흘러간 노래를 흥얼거린다
거짓은 비로소 활짝 날개를 편다
 
내 머리 위로 상상이 겹치면
세로줄 무늬
바퀴만 있어
구름이 정좌로 돌려세운 기차는 직선으로 굽이친다
 
어떤 날은 슬픔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는
끌어안는 자세로 잠을 잔다
지상으로 툭, 떨어지는 한 마리의 공벌레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은
순한 표정으로 오늘의 해를 띄운다
 
나는 것들의 소원은 오직 잠든 나와 맞닿는 것
먼저 뒤꿈치를 든다
 
 바람이 뒤돌아나가고 있다


임후성 시인 추천시


모든 동물은 전복(顚覆)을 꿈꾼다/  김성신

내 목소리를 따라오면 돼 아타카마사막으로 들어갑니다. 
여명을 찾는 지름길
틈새를 메우려는 적요 
거기 근엄한 파수꾼, 굴절이 함께 있어 

멈춰 서면 떠오르지 않는 집, 
아무리 불러도 옆이 생기지 않는 어깨 
혼잣말은 발걸음의 기원일까요 오늘과 나는 함께 몸을 말아 허공을 목소리로 키운다 .

절망은 어떤 질문 끝에 낙타와 조우할 수 있을까 
눈동자 속으로 몰아치는 먼지구름
밤하늘에 꽂혀 있는 무수한 낱말들이 불려나오고 
가깝고 많은, 
시작에서 끝나는 것인지도 모를 바람에 휘말리기도 한다 .

시간의 비늘은 견고해 
비탈을 달아 올린 날카로운 햇빛들
어떤 얼굴은 서 있을 곳 없어 
자주 뒤집어져, 
이마 헐고 발굽 가라앉는 .

헛짚던 채찍을 휘두르며 
두 눈을 뜬 채 
앞발과 뒷발을 동시에 내디디며 걷는다 .

어떤 상처가 소용돌이 하나씩을 만들 때 
발자국의 표면에 빼곡이 채워진 돌과 모래들.

전복(顚覆)은 낙타보다 키 크고 등 높은 동물
함부로, 죽어가던 내가 척추 세우며 올라탈 때 


승천(昇天)에 관한 시로 읽는다. 기독교 식으로는 산채로 들림받는다고 하는 것 같다. 죽은 자가 승천하다면 별다른 일은 아닐 것이다. 시집의 이름으로 보아 승천은 빠져나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화자에게는 ‘나와 오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사막은 바람을 보내 모든 것을 뒤집거나 비튼다. ‘전복(顚覆)’은 어떤 동물인가? 아마도 ‘소용돌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발자국 안에 가득 상처를 채우고 걷는 존재의 얼굴을 뒤집어 자기 등에 훌렁 태우고 여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전복이라는 동물은 어쩌면 시간의 비늘을 달고 하늘을 나는 시작이자 끝인 울음인지도 모른다. 산해경식으로 말하면, 이 동물은 발이 작고 척추가 길고 등이 굽었는데, 울음이 어찌나 큰지 아무도 듣지 못하고 걸음이 얼마나 먼지 도달한 곳을 알지 못한다. 이 짐승의 발자국 안에는 낙타 일만 마리의 발자국이 들어 있는데 가도 가도 아타카마 발자국 안이다. 이 짐승이 나타나면 상처받은 이들이 사라지고 온 누리에 빛과 시간의 비늘이 눈처럼 쌓인다.  
혼자만의 길, 상처와 혼잣말로 걷는 시인의 험지가 강강하게 그려져 있다. (임후성 시인)


김성신 시집 추천사


  시인이란 결국 이민자가 아닐까. 우리가 ‘살고 싶은 아름다운 섬’(「이미그레이션」)을 가장 먼저 찾아 나서는. 가장 처음 발견한 그곳에 꼭 맞는 새 언어로 뿌리를 내리고 수십 년 수백 년을 살 듯, 한 계절을 살고 또 다른 ‘섬’을 찾아 나서는 이민자가 아닐까. 시인이 먼저 살다 간 그곳은 비로소 ‘이제 우리가 살 땅’이 된다.

매 순간 ‘집을 잃은 바람’을 좇아야 했던 시인은, 유연하고 첨예한 언어를 가져야 했다. 바람을 낚을 만큼 촘촘하고, 바람을 ‘시’ 속에 붙잡아 놓을 만큼 유연한 언어. 그리하여 ‘어딘가에 가닿고 싶어 하는 눈빛’(「@」)이나 ‘누르면 터질 듯한 적막’(「그러니까 토마토」), ‘병실의 기분’(「병실의 기분」)도 충분히 담아내는 언어를,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가졌다.

그리하여 시인은 고통스럽다. ‘사라지는 것들이 구석구석’(「당신의 고통보다 빨리 달릴 순 없을 것이다」)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고통’들을 겸손하게 수집한다. ‘물음표’를 ‘안과 밖의 모서리’에 풍경처럼 달아놓고. ‘끝이 만져지는 길’ 위에서 세상의 모든 ‘고통’보다 빨리 달릴 수 없음을, 지나쳐 달리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런 시인의 언어는 세상의 ‘바닥을 향해 올라가’려는 속성을 가졌다. 시인의 언어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다.

‘잠든 몸을 빈집처럼 뒤집는’(「검정1」) 밤, ‘누군가 툭, 떨어뜨린 울음소리가 찻잔에 붙어’있는 밤, ‘금 간 얼굴을 거미가 쓸어 모은’ 밤, 김성신을 읽기 딱 좋은 밤이다. (김중일 시인, 광주대학원 교수)


(정재훈 평론가 서평 일부) 


  우리는 슬픔을 먹고 산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배설물이 아니다. 눈물은 다른 이들에게 보였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얻는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니까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슬픔을 ‘함께’ 먹고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레베카 솔닛이 섬세하게 쓴 대목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이따금씩 달콤한 시적 상상을 맛볼 수가 있다. 그녀가 말한 슬픔과 상심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한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작품이라는 매개물로 인해 끊임없이 전파되면서, 우리 모두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마음 곳곳에 꽃 피우게 했다.

이 해설을 쓰기 전에 필자는 우연히 ‘나방’을 본 적이 있었다.마치 “세상 밖의 노선”(「나방은 누가 풀어 놓았을까」)인 듯 한적한 시골길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나방이었는데, 그 날갯짓이 가리키는/가르치는 것은 눈앞이 컴컴한 어둠 속에도 어딘가에는 작은 빛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의 슬픔과 상심에 다가가려는 마음일수록 “인적이 사라진 고행 속으로 날아가는 나방들”만큼이나 떨렸을 테고, 뜨거웠던 한낮을 가까스로 견디는 와중에 어느새 피어나기 시작한 그 “서늘한 빛무리 속으로/울고 남은 몇 개의 말들”의 날갯짓은 그동안 슬픔과 상심 때문에 흘렸을 누군가의 눈물 자국을 떠올리게 했다. (정재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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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지천명(地天命)의 나이에 굽이진 詩 골(洞)에 들기 위해

깊고 푸른 발자국을 새기며

작아졌다 커지는 신음으로 비탈을 내질렀다


그림자를 돌아앉고 걷고 품어내는 것의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세상은 때로 질문들의 증명

세 번째 별에서 당신은 태어나고



2022년 가을

김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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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태승님의 댓글

profile_image 강태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성신 시인님 -여기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시집 출판을 축하,축하 드립니다 ㅎㅎ

그리고 시집 감사히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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