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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시집 『1초 동안의 긴 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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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6회 작성일 19-06-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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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시 속엔 악천후가 떠돈다

 

우글거리는 아웃사이더의 감정

 

칼날처럼 예민하게 날 선 감각

 

내가 시가 되고

 

시가 나를 길들인 지점

 

또다시 나만의 독립 정부를 세우고 말았으니

 

이것은 시가 나에게 부여한 천형이다


 -시인의 말


     하린 시인의1초 동안의 긴 고백시인수첩 시인선022

                                    


  

 

물고기인간/하린

 

 

엄마 내가 전체적으로 물고기인가요? 넌 지느러미 없이도 골방을 잘도 헤엄치잖니 엄마 지겨운 까치 소리 좀 꺼 줄래요 신경 쓰지 마라 넌 인어(人魚)가 아니라 인조인간이란다 그럼 엄마 난 슬플 때 교미를 해야 하나요 섹스를 해야 하나요 물을 채워 주마 익사한 채 흐르거라 산란도 교과서적으로 해라 짬이 나거든 어제 마감된 원고나 써라 엄마 엄마의 옆구리에서 자꾸 아가미가 삐져나와요 신기해요 만지면 비린내가 자라날까요 난 너에게 어항을 사준 적 없잖니 싫으면 물방울로 번식하거라 그럼 엄마 생일날만이라도 미끌거리는 미역 줄기를 심어 주세요 얘야 물고기는 죽어서 회를 남기고 죽은 물고기는 다시 죽어서 젓갈을 남긴다 이제 그만 눈을 감았다 떠라 버릇은 바뀌고 태도는 쓸데가 없단다 뚜껑을 닫으마 그리고 넌 전체적으로 아가미란다

  

 


일주일째 카레/하린

 

 

친절

일주일째 카레를 먹는다 여자가 제일 잘하는 것은 볶고 지지고 섞는 일 조리대 앞 재료들 표정이 어둡다 당근과 양파에서 잘려 나간 줄기는 주말쯤에 시들었을까 출장 가는 여자에겐 낙천적인 뿌리가 있기나 한 걸까, 여자가 사랑한 비행기는 어떤 포즈로 상냥할까

 

비밀

이사를 하고 벽에 상처를 내는 데 익숙하다 상처가 생을 넘본다 벽은 용도를 변경하지 않는데 사람만 용도를 변경한다 당분간 너머가 궁금하지 않을 거다 초대하지 않아도 오는 사람과 초대해도 오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겠다 신발의 방향은 늘 현관 쪽이지만 마음의 방향은 늘 거실 쪽이다 벽처럼 서서 망각이 되고 싶은데 카레가 또 끓는다

 

자백

수요일 10시에 애인에게 자백한다 카레는 같이 못먹겠다고, 난 이미 바깥이라서, 더 늦기 전에 낡은 무릎이 되리라 통보한다 애인은 절대 울지 않는다 우리는 한때 일 뿐 한 방향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크게 한번 울지도 웃지도 못했으니까, 3분 요리 3분 통화 3분 사랑은 모두 당신 기준이었으니까

 

악몽

목요일에는 그 어떤 형용사도 되지 못한다 한 그릇의 카레로는 국경을 넘는 자를 음미할 수 없다 그릇은 위로가 아니라 모임을 탈퇴한 멤버가 남긴 후기일 뿐이다 잠시 씹는 것을 멈춘다 카레가 육식인지 채식인지를 떠올려 보다 이빨 사이에 낀 질긴 인연에 혀가 흠칫 놀란 척을 한다

 

극진

악몽을 뚫고 나온 당신의 눈동자가 나를 빤히 본다 내 눈동자에 당신의 눈동자가 눌러붙는다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내 의지가 집착을 물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무도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된 것 같은데 환()이 날아다닌다 당신 처음부터 옆집 같았어메시지가 깜박거린다 금요일 밤이 지나기 전에 어느 쪽이든 선택하라는 식이다

 

유리

당신이 가둬 놓고 떠난 후 말들이 튀어나올까 봐 거울을 볼 수 없다 모든 표정이 물방울처럼 맺혔다 미끄러졌다 입김을 불어 선명한 내적 갈등이라 적어 본다 지운다 흔적이 남는다 독백도 결국 질문이었을까 내 독백과 당신 독백 섞여 불투명하다 거울은 내내 불편했다

 

거처

슬픔도 아닌 것이 그리움도 아닌 것이 눌러붙기 직전이다 식사 다음에 뭘 하지? 산책 아니면 섹스? 싸구려 장면이 지긋지긋했다 떠도는 일요일을 어디에 버리고 와야 하나 지구의 혈을 작심하고 누른, 신발이 남겨진 난간 위를 걸어야 하나 이젠 모든 주관성이 착각임을 알겠다 당신만 모르는 새로운 거처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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