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만 시집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33회 작성일 19-07-09 17:38본문
달의 가슴
고성만
그 숲에서 새들이 날고 꽃이 울었다 백골단에게 쫓기던 5월, 그녀와 함께 막다른 골목 가게의 셔터를 밀고 들어갔는데 그 속에 잔뜩 긴장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치약을 짜서 코 밑에 발라주는 그들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날 밤 낯선 여인숙에서, 그녀의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가슴에서는 물냄새가 났다 내 심장도 왼쪽에서 쿵쾅거렸다 시름시름 앓던 그녀가 고요의 바다*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깐 왔다 사라지는 통증이겠거니 했는데 오래 오래 새들이 날고 꽃이 울었다
달의 가슴 왼편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하다
⸻⸻⸻⸻
* 달에 있는 지명.
지리산 민박집
갈수기의 하동호수 지나 위태와 양이터재 사이에서 몇 번 망설인다 가다 돌아오더라도 어차피 가야할 길인걸
마당에 장작 쌓인, 노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에 들어서서 계십니까? 외쳤는데 별나도 큰 기척에 스스로 놀라 묻는다 여기가 어디쯤이죠?
물방울 떨어지는 대숲
팬플룻을 부는 바람
아침식사 준비 되었네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밥을 먹고 올라오다가 벤치에서 문득 마주친 여자, 자기 앞의 生* 옆에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먼 산 바라는 눈길이 머쓱하여 방으로 들어와 배 깔고 엎드려 전하는 소식, 남쪽 섬 등대길 동박새여 밤새 안녕하신가
⸻⸻⸻⸻
* 에밀 아자르.
모든 섬은 원래 뭍이었으나
해는 거대한 용광로 속으로 떨어지는 한 점
꽃잎 같아
위도 송이도 안마도 상낙월도 하낙월도 대각씨도 소각씨도……
너와 함께 지은 집에서
빠꿈살이*하듯
굴 따고 조개 잡으며
어느 날 하루는 만돌린 들고
나명들명
어느 날 하루는 아코디언 들고
들명나명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 깊어졌으니
절벽 아래 갯바위로
조약돌로
모래알로
부서지리
⸻⸻⸻⸻
* 소꿉장난.
⸺시집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2019년 3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