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시집 『 비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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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2회 작성일 19-11-01 01:05본문
비밀이다
오래도록 가부좌하던 난분蘭盆
우러러보던 근심 한 줄기가
입술을 연다
필시, 내게 할 말이 있을 터,
곡진한 기다림에게
낮고 여리게 말하고 싶은 거
작은 종소리 울린 것 같아라
실눈 뜨는 눈언저리
촉촉한 슬픔 끼 알아채는
애간장 저리는 가만한 때
홀로 한 겹 유한有限을 여는구나
깊은 비밀이 생기는구나
너무 고운 비밀은 아픔이구나
애잔한 사랑은 더디게 더디게 오느니
밤 깊자
귀뚜리 한 마리 또르르 굴러와
별빛 몇 데리고 들어선다
붉은 먼 꽃 오기 전에
장미 가시가 왼팔을 그었다
곡선의 긴 상처
내가 가시를 그었을 수도
그는, 우리 집 꽃이 된 지 오래되었고
울타리로 감싸준 수문장
관계 깊은 사이 아니던가
스르릉 생피 돋는 일월 창밖
문득 내비친 바이올린의 감성
날카롭고 처연한 활의 울림으로
속마음 한 줄기 읊어주었나
굳고 무딘 중심을 날카로운 스침으로 깨우려 했을 테지
하늘 몹시 무겁고 바람 센 날
허리 굽힌 가지가 어린 고양이를 보고 있을 때
어린 고양이가 가지를 보고 있을 때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팔에 출렁인 선율
감동을 새긴 상처는 변주 없이도
붉은 먼 꽃 오기 전에 멀어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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