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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연애하는 법 16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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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22회 작성일 15-10-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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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본뜨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와 같게 하거나 흉내내어 그대로 따라 한다는 뜻이다. 미술시간이나 무슨 공작물을 만들 때 곧잘 쓰는 말이다. 떠야 할 본(本)을 문자나 행동으로 따라 하는 일을 모방이라고 한다. 또 그림이나 원본을 베끼는 일은 모사(模寫)라는 말을 쓴다. 동양화나 서예를 배우는 사람이 첫 번째 하는 일이 바로 모사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창의적으로 붓을 놀릴 자격이 주어진다. 붓을 놀린다는 어떤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모사는 필수요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사람은 모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연속성 위에 놓인 극이 행동의 모방이라고 했다. 이 모방론은 문학의 기원과 발생을 설명하는 일에서부터 창작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에까지 두루 활용된다. “인간의 욕망 자체에는 전염병 같은 본질적 모방 경향이 내재해 있다”(<폭력과 성스러움>, 민음사)고 한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다. 그는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모방본능은 동질성의 본능과 통한다고 하였다. “자기가 지향하는 존재를 발견할 때마다 그 추종자는 타인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을 욕망함으로써 그 존재에 도달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뛰어나거나 잘난 상대방과 유사해지려는 욕망은 본능적으로 언어 표현이나 행동을 통해 나타나게 마련이다.


〈억지 모방해 ‘아류’ 그치지 말고〉
〈변화를 추구하되 ‘법도’ 살필 것〉


예술작품의 모방에 관한 논의는 서양보다 동아시아에서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고대부터 당대까지 중국 시학의 요점은 모방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쉰(魯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견준 중국의 고대 문학이론서가 있다. 유협(465~532로 추측)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이 바로 그 책이다. 그는 전고(典故)를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경서(經書)의 우아한 어휘를 공부하여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면 이는 광산에 가서 구리를 주조하고, 바닷물을 쪄서 소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모방을 배우는 것, 그게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의 시인과 이론가들은 전고의 활용 여부가 창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즉 앞선 전통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심조룡>은 ‘통변(通變)의 기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통’이란 전통의 계승을 가리키는 말이고, ‘변’은 말 그대로 전통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론은 “문장을 이루는 문학양식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지만 표현의 기교에는 정해진 규율이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창작에 임할 때에 작가의 진정성(문심)과 언어의 예술적 표현(조룡)이 조화와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시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고를 활용하는 것을 모방의 한 방식이라고 본다면, 송대의 황정견(1045~1105)을 필두로 한 강서시파는 이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단 한 글자도 출처가 없는 것이 없다”(無一字無來處)고 하면서 옛사람의 시를 많이 읽고, 학식을 바탕으로 시를 지어야 한다고 하였다. 황정견은 시를 쓰는 방법으로 두 가지 유명한 이론을 제시했다. 옛사람의 시원찮은 말을 빌려 써 시를 돋보이게 한다는 ‘점철성금법’(點鐵成金法)과 옛 시인의 뜻과 표현을 빌려 새로운 시를 낳는다는 ‘환골탈태법’(換骨奪胎法)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금대에 와서 왕약허(1174~1243) 등에 의해 정면으로 비판을 받는다.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독창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강서시파의 이론은 표절, 답습, 짜깁기, 도용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시인들이 앞선 문장의 활용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인 것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통의 계승과 변화·발전 사이의 갈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중국 시인들에게 있어 모방의 문제는 단순히 표절 여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의 형식, 주제나 소재, 창작기법 등 시 창작의 전반에 걸쳐 모방의 방식을 줄기차게 사유했던 것이다.

옛글을 활용하는 ‘용사’(用事)에 대해 <중국 고전 시학의 이해>(이병한 편저, 문학과지성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용사’라는 표현을 ‘모방’으로 바꾸어 간추려 본다.

첫째, 모방을 위한 모방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죽은 시체를 쌓아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억지로 모방을 해서는 안 된다. 누에가 뽕잎을 먹되 토해내는 것은 비단실이지 뽕잎이 아니다. 셋째, 모방을 융화시켜 매끄럽게 해야 한다. 물 속에 소금을 넣어 그 물을 마셔봐야 비로소 짠맛을 알게 되는 것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주역에서는 “궁하면 변화하게 되고, 변화하면 통하게 되며, 통하면 오래갈 수 있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고 했다. 우리의 연암 박지원도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화할 줄 알아야 하고, 변화하되 능히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고 글쓰기의 지침을 이야기한 바 있다.


〈모사 관문 거쳐야 붓 놀릴 자격〉
〈중국 시가는 모방 놓고 논쟁도〉


현대에 와서도 시 창작에 대한 고민은 모방에 대한 고민과 궤를 같이한다. 모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가령 모방을 한다면 어디까지 모방하고, 무엇을 모방하며, 언제까지 모방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의 모방의 형태를 한번 살펴보자. 우선, 전범이 되는 시인이나 시적 경향을 추종하는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주제와 소재를 비롯한 시의 내용을 답습하는 일, 운율이나 언어 사용 기법 등 형식을 답습하는 일, 그리고 구체적인 문장이나 어휘 표현을 베껴 도용하는 일이 모두 모방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에다가 창작자 자신이 자신의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동어 반복하는 일도 일종의 자기모방에 해당한다.

김춘수는 모방을 일삼는 사람들을 아류라는 말로 평가 절하한다. 아류란 스타일과 소재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독창적인 어떤 시인의 뒤만 따라다니면서 세상에 남이 입다가 낡아서 벗어던진 헌옷만을 주워다가 헐값으로 팔아서 퍼뜨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박성을 통박하면서도 그는 습작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모방하게 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발 물러선다. 그러나 “습작이란 남의 영향권을 벗어나는 작업”이므로 남의 아류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쯤에서 당신은 작은 답을 구하기 바란다. 혼자 써놓고 혼자 보는 시라면, 그걸 습작이라 한다면, 남의 옷을 입고 자신의 옷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모방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에서 시적 영감이 번개 치듯 심장으로 날아오기를 기다리지 마라. 그보다는 차라리 흠모하는 시인의 시를 한 줄이라도 더 읽어라. 시험을 대비하는 공부도 하지 않고 ‘나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쳐보는 행위는 부도덕한 짓이지만 훔쳐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답안지 쓰기를 포기한 사람은 바보다. 당신은 모방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지 마라.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고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정희성, <아버님 말씀>)대로 말한다면 당신에게 모방을 하라고 하면 도둑질을 하라는 것이 되고, 당신에게 새로이 창조하라 하면 구차한 표현을 일삼으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모방을 배워라. 모방을 배우면서 모방을 괴로워하라. 모방을 괴로워할 줄 아는 창조자가 되라. 모방의 단물 쓴물까지 다 빨아들인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까스로 낼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모방의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즐거운 창조자가 되라. 모든 앞선 문장과 모든 스승과 모든 선배는 당신이 밟고 가라고 저만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징검돌 삼아 그들을 밟고 뚜벅뚜벅 걸어가라. 시인은 모든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구성할 임무를 타고난 사람들이므로.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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