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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만들기의 방법과 의미 -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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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22회 작성일 15-11-2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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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만들기의 방법과 의미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이은봉


시인에게는 풍경이 곧 재산이라는 말이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시를 '풍경 만들기'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때의 풍경은 단지 하나의 서정적인 컷일 수도 있고, 서사적 동영상일 수도 있고, 이미지들이 마구 혼재되어 있는 무의식적 장면일 수도 있다.
시는 일종의 언어그림이다. 시를 그림과 비교해 논의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너무 사실적인 그림, 즉 구상화는 금방 싫증을 느낀다. 약간의 추상이 가미된 그림, 말하자면 반추상의 그림이 두고두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재미를 주는 경우도 많다. 시의 경우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다. 서너 개의 풍경을 덧씌워 이룩한 시의 경우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은 재미와 호기심을 줄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나는 시에 여러 가지 풍경을 중첩시켜 환상적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을 선호한다. 약간의 비현실적인, 비의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려고 하는 것인데, 물론 이 때의 중첩된 풍경은 중첩된 풍경은 중첩된 의미를 생산한다.
현대시의 모호성은 현대사회의 불확정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시어 자체의 특수성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시인이 지니고 있는 인식 능력의 무능성을 반영해서는 안 되리라.


겨우 겨우 가슴으로 모시고 다니는 집, 전쟁통에 허겁지겁 정신없이 지은 집 너무 낡았네

걸핏하면 굴뚝 밑 무너지는 집, 함부로 방고래 막히는 집 아궁이 가득 불덩이 처먹고도 방구들 뜨뜻하질 않네

사람들 아랫목 이불 속 손 넣어보곤 아이, 차가워라 마음까지 얼어붙곤 하네

청솔가지 타는 냄새 매캐한 집, 도둑고양이들 우르르 몰려다니는 집 고방 밑까지 우수수 무너지고 있네

전쟁통에 지은 집, 다들 그러하네 이 집 수리하느라고 병원엘 다니는 내게 현일 스님은 그만 다 버리라고 하네

……버리면 어쩌지 이 낡은 집, 그래도 그 동안 나를 키워준 집
―「낡은 집」전문



이 시에서 집은 일단 말 그대로의 집, 곧 주거공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집으로, 주거공간으로 읽어도 충분히 일정한 시적 형상, 즉 시적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일단 낡은 집으로 읽히도록 장치를 한 셈이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으며 키를 열고 들어가면 이 시에서의 집이 이내 시인의 시원찮은 몸, 아픈 육체를 가리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가 내포하는 의미망은 그 뿐만이 아니다. 좀더 눈을 밝혀 읽으면 여기서의 집은 시인의 몸뿐만 아니라 시인의 계집, 즉 시인의 아내의 아픈 몸을 가리키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힐 수 있도록 몇몇 심미적 장치를 숨겨 두려고 했다.
시인이든 시인의 아내든 나로서는 집을 몸으로 읽었을 경우 신통치 않은 몸을 지켜내기 위해 시인이 이런저런 애를 쓰는 풍경이 떠오르도록 몇몇 징후들을 장치해 두었다. "이 집 수리하느라고 병원엘 다니는 내게" 등이 그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 가운데에도 나는 이 몸이 역사적 산물임을, 6·25 전쟁의 산물임을 암시하려고 했다. 전쟁통에 대를 잇기 위해 우발적으로 만들어진 몸, 곧 "전쟁통에 허겁지겁 정신없이 지은 집", 즉 그렇게 해서 태어난 몸이라는 것을 드러내려 했다는 뜻이다.
요컨대 겉으로는 단일한 풍경처럼 보이도록 했지만 속으로는 두 개 이상의 풍경(체험)을 중첩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방법적 자각이 방법적 자각 자체만으로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형식이 곧 내용이라는 역설적 정의를 떠나서라도 나로서는 이러한 방법적 고려를 통해 우리 시의 내포를 확장시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물론 그것은 역사적 전망과 함께 하는 시대가 만드는 양심에 충실하려는 의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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