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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종장의 처리 -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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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75회 작성일 15-12-1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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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종장의 처리




우리 성정에 맞는 가락으로서, 민족의 정형시로서 시조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시조 형식을 어느 천재가 하루아침에 만든 것은 아니었다. 세월을 거슬러 저 백제 노래 「정읍사」에서부터 그 형식의 기원을 찾을 만큼 유구하다. 이 시조가 고려말부터 노래로 불려지다가 조선조에 이르면 활짝 꽃을 피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래의 형식이었지 시의 형식을 이르는 건 아니었다.
시조가 노래(창)를 잃고 현대화하면서 시조도 현대 자유시의 속성을 닮지 않으면 안 된 것이 오늘의 시조가 지니게 된 숙명일 것이다. 시조에 유연한 가락은 물론이고, 감각적 심상까지 현대시의 경계를 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제 시조는 노래가 아니라 시인 것이다. 일단 시로서 읽힐 수 없는 시조라 하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퇴행에 다름 아니다.
오늘의 현대 시조가 있기까지 가람과 노산은 차라리 역사의 과정일 것이며 그 뒤를 이어 이호우, 김상옥에 의하여 현대 시조가 노래를 잃고서도 시의 모습으로 더욱 당당히 설 수 있었다.
시조의 형식은 일단 평시조가 기본이다. 굳이 엇시조, 사설시조의 현대화를 실험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럴 바엔 차라리 현대시를 쓰는 편이 낫다는 게 내 개인적인 관점이다. 시조는 3장, 6구, 총 45자 안팎의 정형률을 가진다.

3 4 / 3(4) 4 /
3 4 / 3(4) 4 /
3 5(∼8) / 4 3 //

초장, 중장에서는 한두 자의 가감도 허용되는 융통성이 있으나 시조의 생명인 종장의 첫 음보는 3자, 둘째 음보는 5자 이상 8자까지의 틀을 지켜야 한다. 만일 종장이 초, 중장과 마찬가지의 음수율을 가지게 되면 그건 시조가 아니라 짤막한 조선시대의 가사(歌辭)의 일부이거나 판소리에 가까워질 것이다. 화룡점정이라고 할 종장의 첫째, 둘째 음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잘 구슬리는가는 시인의 역량과 관계 있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이호우, 「달밤」

지극히 자연스런 가락이 한 폭의 수묵화에 곁들여진 명작이다. 시조의 정형률이 조금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고 어쩌면 이다지도 물 흐르듯 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놀랍다. 요즘 발표되는 현대 시조도 이만큼 틀을 지키면서 자유로운 심상을 살려 쓴 작품이 흔치 않다.
그런데 내게는 세 번째 수의 종장이 어쩐지 맘에 걸린다. 시인 자신도 그러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이는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 더니다"로 음수율의 분석을 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시인은 그 앞 중장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 밤도"와의 대비를 생각해서 그리 했으리라. 시상의 대비에 얽매이다 보니 첫머리에 할아버지를 내세워야 했고 '할버지'라는 군색한 준말이 나왔다고 보아진다. 할아버지를 줄여서 할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율 짓는 할아버지께 달이 내려왔더이다."라고 고쳐 봄직도 하다. "율 짓는(3) 할아버지께(5) 달이 내려(4) 왔더이다(4)."라는 음수율이어도 무방할 것 같다.
또 한 가지. 할머니가 읽다가 잠이 든 '조웅전'은 웬만해선 알기 어려운 우리 고전소설의 제목이다. 그것을 모르는 독자라면 '조웅전'을 절간의 '대웅전(大雄殿)'과 혼동할 법도 하다. 내가 중학 시절에 이 작품 속의 '조웅전'을 '대웅전'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보편적 이해의 폭을 고려하여 '심청전'을 읽다가 할머니가 잠든 것으로 해도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심청전(沈淸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율(律) 짓는 할아버지께 달이 내려왔더이다.

크게 시의 심상을 다치지 않으면서 독자들의 곤혹스런 오해도 줄일 겸 이렇게 고쳐 보았더라면 어떨까, 고인이 되신 이호우 선생님께 가만히 여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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