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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 정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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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82회 작성일 15-12-1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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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정효구(문학평론가, 충북대 교수)




1. 자신을 '필터링'하라


우리 시는 지금 지나치게 이완돼 있다. 언어가 절제되지 못한 채 소란스럽거나, 지루하다. 다변, 요설, 장광설, 한담, 사소한 언설의 즉흥성이 시의 시다움을 위협하고 있다.
시인들이 표현하는 것이 감각이든 감정이든, 생각이든 이념이든 그 자신의 내면은 물론 그 언어를 마지막 단계까지 '필터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르고 걸러서 더 이상 걸러지지 않는 종자 씨앗 같은 것, 부서지지 않는 금강석 같은 것, 그런 것들을 시 속에 들여놓아야 한다. 이 바쁜 세상에 누가 여과되지 않는 남의 말을 경청하겠는가. 설혹 한가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누가 여과되지 않은 남의 말을 계속 흥미롭게 들어주겠는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특히 점점 그 숫자를 더해 가는 문학지의 양과 발표 면의 증가는 시인들의 내면과 언어를 이완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은 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며, 문학 외적 경계에 끄달리거나 휘둘리는 것은 그의 책임이다. 그리하여 엄격하게 여과되지 않은 내면과 언어가 그대로 발설될 때, 그것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한 존재의 구업(口業)이며, 신업(身業), 의업(意業)이다.
비유하자면, 텔레비전 채널은 많은데 볼 만한 프로가 없듯이, 홍수 속에 식수 없듯이, 신문의 면수는 두꺼워지는데 기사의 질은 떨어지듯이, 뷔페식당에서 먹을 것이 없듯이, 우리 시단과 시인 그리고 시 작품은 여과되지 않는 양적 공세 앞에서 지금 위험한 양상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신을 차릴 때가 되었다. 제정신을 찾을 때가 되었다. 시 정신을 돌볼 때가 되었다.

그 첫 번째 주문으로 나는 시인 자신의 내면을, 시의 언어를 마지막까지 홀로 그만의 방에서 엄격하게 '필터링'하라고 말하고 싶다.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윤동주의 말을 다시금 음미해 보고 싶은 것이다.


2. 독자와 소통하라


한때 시인들은 독자들을 원망할 때가 많았다. 특히 대중 독자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할 때가 많았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시를 공들여 써내는데 어찌하여 그 시를 제대로 읽을 능력이 되지 않거나, 읽으려 하지 않느냐고, 문제의 원인을 독자 편에 돌렸던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이런 점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제 이와 더불어 또 다른 측면에서 '커뮤니케이션' 혹은 '소통'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 시단은 일반 대중독자들뿐 아니라 전문 독자들까지 시인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상태에 처하고 말았다.

소통이 부재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경험의 상이성, 말하기 방식이나 언어 표현의 구조적 상이성, 감수성과 가치관의 상이성 등등이 그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부차적이다. 우리 시단을 돌아볼 때, 더 중요한 원인은 시의 자폐화와 마스터베이션화, 공공성의 상실, 요령부득의 언어가 남발되고 있는 현상에 있다.
시란 누가 뭐라 해도 말하기 방식의 일종이다. 다시 말하면 화법의 일종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의식하고 그와 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것이다. 만약 소통을 거부하고 자폐적인 은어로 혼자 말하고자 한다면, 그냥 자신의 수첩에 써 놓으면 된다. 그때 적어도 그 자신이 화자이며 청자가 되는 기쁨이 그 안에 있지 않겠는가.
시의 언어가 함축적, 개성적, 창조적인 것이라고 하여, 소통까지도 불가능한 언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의 언어가 지닌 이러한 특성은 오히려 더 깊은 소통을 은밀히 이룩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시인들이여, 특히 젊은 시인들이여! 시의 자폐화 경향을 적극 넘어서라. 아무리 공공의 지대가 상실되고 파편화된 개인의 취미만 남는 것 같은 현실이 다가온 듯하여도,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시의 현실이며 삶의 현실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라.
어느 때보다 소통이 필요한 때이다. 현대적 개인의 발전 너머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개인의 단절과 칩거가 아니라 그것의 초월이자 극복이다.


3. 혜안(慧眼)으로 심연을 관(觀)하라


시를 읽는 일이 점점 더 심심해진다. 뛰어난 누군가가 있어 죽비로 존재의 안쪽을 내리치듯 '서늘한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 비슷한 소재, 비슷한 상상력, 비슷한 언어, 비슷한 주장, 비슷한 문체, 비슷한 문제의식 앞에서 갑갑한 심정이 될 때가 많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이렇게 비슷한 것들이 많을까? 좀 다르면 안 될까?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멋진 시단을 만들어내면 안 될까?
상상력과 언어의 유사성이 한 시대의 집단의식의 산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아도, 특별한 존재로서의 문제적 개인이자 시인을 기대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사성을 보는 마음은 답답하다.

나는 생각해 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그것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지성의 부재요, 공부의 부재이다.
생각은 우리를 새롭게 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할 때, 그것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함으로써 나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남이 갔던 길, 그 자신이 이미 갔던 길을 다시 가면서 그것을 가리켜 '생각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각은 공부에서 나온다. 그 공부가 교과서적인 지식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다. 시인은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이지만, 공부와 생각이 뒷받침되지 않는 감수성은 위태롭고, 그것이 수반되지 않을 때 감수성조차도 진부해진다.

또 다시 생각해 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자기 목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불어오는 목소리를 그 자신의 목소리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눈을 뜨지 않기 때문이다. 남의 눈을 그 자신의 눈으로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에다 '혜안으로 심연을 관하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을 붙였다. 여기에는 실상을 보자는 뜻을 역설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금강경(金剛經)』을 보면 다섯 가지 안목이 나온다.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 그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도 급수만 조금씩 다를 뿐 시인들 역시 중생 놀이 하는 중생심에 젖어 육안으로 겨우 세상을 바라보며 말을 해보는 데 불과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혜안'을 들고 나왔다.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그러나 다른 눈을 뜨지 않는다면 다른 시가 창조될 수 없다.

뱀이 허물을 벗듯, 허물 벗는 일이란 너무나도 어려운 인생일대사의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진흙소처럼 통과한 눈으로 바라본 세계, 거기서 탄생된 언어를 만나고 싶다.
시가 다른 언어나 세속의 양식과 구별되어 그 존재 의미를 찾으려면, 눈을 떠야 한다. '혜안'을 꿈꾸어야 한다. 그 안목에 포착되는 세계가 노래되어야 한다. 눈을 뜰수록 우리는 깊이 볼 수 있다. 깊이 볼수록 한번도 건드리지 않은 시인의 심연에서 솟는 샘물을 만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견자(見者)'가 될 수 있고, 그 언어와 시 앞에서 독자들은 크나큰 전율과 거듭남의 환희심을 맛볼 수 있다.


4. 혼을 넣어 헌신하라


시를 발표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그가 먹어서 살로 갈 만한 하나의 언어적 세계를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말은 시가 나르시시즘이나 자기현시, 더 나아가 자아 우월감이나 자아 한탄과 같은 소아적 도구성을 넘어서서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식당은 많고 간판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려한데 진정 먹고 살로 갈만한 음식을 해주는 집은 많지 않다. 만약 그런 집이 있다면 그 집은 수많은 경쟁 속에서, 간판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손님이 줄을 서서 찾는 집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말로 드러내진 않는다. 그러나 단지 말을 하지 않을 뿐, 직감적으로 그것이 어떤 실체이며 본질을 담고 있는지, 그것을 보거나 느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우리 시단의 시를 보며, 앞의 이야기와 같은 상황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우리 시가 진정 자아의 도구성을 넘어 혼과 진정성을 담은 헌신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을 해본다. 제아무리 멋진 수사와 문체를 자랑하여도, 제아무리 말끔한 형식적 특성을 갖추었어도, 작품 속에 혼이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은 점점 그 작품과 깊게 만날 수 없다.
이것은 시를 쓰고 발표하는 시인의 자세와 태도의 문제에 결부된 사항이다. 한 작품 속에 진정 혼이 들어 있는지 어떤지는 시인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작품 속에 혼이 깃들 때, 따라서 그것은 먼저 시인 자신을, 그리고 이어서 그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혼은 육체를 넘어, 욕망을 넘어, 이성을 넘어, 한 존재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영기(靈氣)이다.
그렇다면 혼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이 표면만을 떠도는 세상에서 어떻게 혼을 만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혼은 대아적(大我的)인 살림의 마음 속에서 탄생한다. 그 마음 앞에서 우리는 자발적인 헌신의 자세를 가지게 되고, 그것은 영성을 실어 나르는 통로가 된다.

혼이 깃들 때 언어는 꽃처럼 피어난다. 혼이 깃들 때 시는 호소력을 가진다. 혼이 깃들 때 시인은 도모하지 않아도 독자와 하나가 된다.
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유형의 시가 나올 수 있고, 다른 이야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단과 우리 현실을 놓고 볼 때, 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이 필요하다. 시가 기술을 넘어, 재능을 넘어, 수식을 넘어 한 존재를 들어 올리고자 할 때, 시 속에 필요한 것은 바로 혼인 것이다. 이때 지예(至禮)는 지도(至道)와 닿을 수 있다. 시가 언어의 일로, 개인의 일로, 인간의 일로만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일심(一心)의 전일성을 생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 이 글은 뒤이어 '김수영의 비발표시와 이어령의 신작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생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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