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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시는 너무 써 -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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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49회 작성일 16-03-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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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시는 너무 써 - 서효인

 

 

1.

세상은 쓴맛이 난다. 보통의 세계는 보통의 사람에게 늘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지만, 고통은 당신에게, 그리고 또 당신에게 항상 최고치를 경신한다. 시는 고통의 최고점에서 찍는 발랄한 놀이다. 아픈데 놀다니. 그러니까 변태라는 거다. 변태는 다른 말로 하면 아름다운 취향이다. 예컨대 이런 농담도 가능하겠다. 도저히 인간이 먹을 수 없는 도수의 술을(글라스로) 비워내던 할아버지. 뜨거운 탕에 들어가 시원한 감탄사를 뿜어내는 아버지. 견딜 수 없는 온도의 황토방에서 장시간 연체동물인 듯 유영하시는 어머니 등등.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의 동물들은 공감대를 형성하면 급속도로 친해진다. 술친구와 사우나친구, 찜질방 친구를 보라.

이러한 소소한 생활에서 더 나아간, 그야말로 변태의 취향은 특정인이 아닌 일반 사람에게 있어 참을 수 없이 놀라운 세계가 되어버린다. 놀라움을 정복한 마니아들에게는 취향의 본격적인 형태, 즉 패티쉬 혹은 스토킹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시는 고로 참을 수 없이 놀라운 변태의 아름다운 취향인 것이다. 일단, 자신만의 스타일에 집착하고 탐닉한다(패티쉬). 이단, 일상적 생활을 뒤로 한 채 긴긴 밤을 홀딱 세며 쓴다(스토킹). 삼단, 쓰디쓴 세상을 바라보고 삼키며 뱉어낸다. 똑같은 세상을 더욱 쓰게 느끼는 것. 그래서 결국은 쓰고 마는, 고통을 즐기는 변태적 행위. 미치도록 아름다운 취향.

 

2.

그들은 늘 인상을 쓴다. 즐기지만 아프기 때문이다. 고통의 최고점은 관계에서 온다. 너에게 닿지 못하는 나의 말, 나에게 다가오는 부조리, 혹은 네가 맞닥뜨린 무차별한 폭력. A-Z까지 모조리 시가 될 수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현실이라고 부르자. 모든 시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다시 현실을 호명하는 시는 많지 않다. 쓰디쓴 세상을 구성하는 형태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는 것이 고통의 최고점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믿는다. 꼰대라 불리던 사나이들은 대부분 자기 제자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꼿꼿하게 이름을 외우고 꿋꿋하게 체벌을 가한다. 결국 기억에 남은 선생은 꼰대들이다.

그런고로 시인은 변태적 기질의 꼰대가 되어야 하겠다. 그들은 등교시간 학생들의 옷차림을 살피듯이 천천히 세상을 관찰할 것이다. 덜 모범적인 녀석, 더 이상한 놈에게 눈길이 갈 것이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은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 모든 변태가 그렇듯이 말이다. 결핍된 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고, 서로의 얼굴을 오래 쳐다보는 행위, 즉 나름의 애무가 시를 쓰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메워지지 않는 상처에 심지 굳은 얼굴로 소독약을 부어주기 위해서는 꼰대가 되어야 한다. 아마 잔뜩 인상을 쓰고 있을 것이다. 마주치는 모든 것들과의 치열한 관계를 맺어야 하니까. 자세히 보고 열심히 다독여야(패야!) 하니까. 인상이 써질 수밖에 없다. 구겨진 셔츠처럼 늘 인상을 써야 하는, 시 쓰는 자들의 곤욕.

 

3.

그들의 쓰임은 별로 없다. 자본의 정글에서 가장 청정한 구역에 그들은 존재한다. 너무나 청정하다보니 어지간해서는 팔리지 않는다. ‘그것들은 팔리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곧 ‘그것들은 쓸모가 없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도통 쓸모없는 일에 얼굴 붉히며 달려드는 이유가 뭔가. 광포한 자본의 무차별한 습격에 맞설 수 있는 자는 결국 쓸모없는 자들이다. 잉여인간들의 반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칸트와 김현의 고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들은 쓸모없기에 무한히 자유롭다. 자유롭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 이 쓸모없고 아름다운 자들에게 자본의 협상력은 지지부진하다. 자본의 입장에서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족속이다. 대체 뭐하자는 거야?

다시 돌려 말하자면 당신이 원한다면 같이 놀자는 것이다.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아플지도 모른다. 책임은 질 수 없다. 자본에게도 협상하지 않는데, 읽는 사람과 타협을 하겠는가? 아파도 참고 그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봐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하는 말을 천천히 되씹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어렵다고 외면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어려운 놀이일수록 한 번 빠지면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주위에 득실거리는 야구 폐인들을 보라) 변태 + 꼰대와 재미나게 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하다. 봐주고 들어주고 거기에 고개 끄덕여주는 1人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쓰임이 없어 무심한 척 하는 잉여인간들도 알고 보면 따뜻한 관심은 필수.

 

4.

변태, 꼰대, 잉여인간으로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는 결국 변태와 꼰대와 잉여인간들이 벌이는 한바탕 놀이다. 당연히 규칙을 가지고 있고 참여자가 있으며 잘 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존재한다. 참여자들이 예사로운 사람들이 아니므로 이 놀이 또한 심상치 않을 것이다. 시는 이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놀이에 익숙한 이들은 전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편안한 방식으로 익숙한 놀이를 하려면 평일 저녁 TV 앞에 앉아 막장 드라마를 시청하면 그만이다. 전위에서 활개 치는 시들은 그 맛이 된통 쓰다. 시는 되도록 쓴맛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도 내기 힘든 그런 맛.

그래서 시는 너무 쓰다. 범상치 않은 스타일에 대한 과도한 탐닉과 집착에 혀는 얼얼하고 입술은 따갑다. 타자와 현실을 오래 바라보느라 이마에 주름살은 늘고 머릿수는 없어진다. 자본이 같이 놀아주질 않으니 배는 고프고 가끔은 마음이 서럽다. 하지만 써야 한다. 그것이 재밌기 때문이다. 쓴맛의 재미. 슬픔의 즐거움. 시는 그렇게 존재하고 다시 떠나버린다. 놀이라는 게 그렇듯이 재창조되고 스스로를 갱신한다. 시는 그러니까 만족을 모르는 나쁜 남자(여자)다!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아, 귀신같은 사람.

 

그러니까, 내게 시는 너무 쓰다. 그래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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