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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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294회 작성일 20-09-29 00:54본문
가을밤
높이 놓여나는 것이 날 부르는
소리. 까맣다. 눈동자가 많다. 파도 몰려오는 소리가
내 망막 안에서 들린다. 갈잎들이
한 방향으로 쏠린다. 언어들 속 분침과 초침이
겹쳐지지 않는다. 금붕어들이
오락가락한다.
입술이 바싹 말라
내 유년의 그늘 속 창녀가
금발 여자아이 손을 잡고 달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여자아이는 한번도
엄마 하고 불러본 적 없다. 가을밤은
허공을 흘러가는,
아직은
후박나무 잎새 안에 째깍거리는.
이층으로 가는
건들거리는 녹슨 철제 계단,
난간에 보조개 패인 달
반대편에
허물어지는 탑을 쌓다가.
탑 주변을 공전하던
아이의 발목은 이미
잘려나가고, 칼날은 유성처럼
흘러내리고, 피묻은 치마는 어쩌면
투명한 창을 열고,
밤하늘 들려오지 않는
내 귓속에 들어가 박새의 황홀한
질식을 엿본다.
댓글목록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을밤이 성큼성큼 걸어와 펼쳐놓은 서늘한 옷자락에
담긴 소리와 형상들이 잡힐듯 잡히지 않는 시간의 소용돌이를
그려내는 황홀한 밤이군요.
시공을 넘나드는 코랠리님의 향기가 그윽하여 깊은 가을밤이
더욱 깊이 가라앉게 하는 청량함을 길게 한 호흡 들이킵니다.
시가 점점 깊어져서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하시는 군요.
좋은 작품 고맙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명절 잘 보내시기바랍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언제나 제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시는 그
혜안에 감탄합니다. 석류꽃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네요. 그리고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릴 적 이층에 양공주가 살았는데, 딸 이름이 스잔나였습니다. 금발인데 얼굴은 한국인이었던. 미국으로 아버지 찾아 간다고 했는데, 그 아이를 짝사랑했던 저는 미국으로 안갔으면 했지요. 얼굴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미국 가서도 순탄하게 살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추석 명절 잘 쇠십시오.
날건달님의 댓글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당신의 계절에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하네요. 당신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지... 하지만 저는 당신의 고통속에서 황홀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시가 좋아요, 제가 나쁜 사람이죠?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그냥 시 쓰는 것은 재능도 노력도 아닌, 운명인 것 같습니다.
제 시 속에는 사실 이 게시판 많은 이들이 등장합니다. 날건달님도 아마 모르는 새 등장하셨을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날건달님은 나쁜 분이지만 초상권료로 대신 받겠습니다.
추석 명절 잘 쇠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