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카쿠지 (金閣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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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313회 작성일 20-11-06 08:20본문
킨카쿠지 (金閣寺)
나는 어둠 속에서 킨카쿠지 지붕이 금빛으로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쯤 알고 있었다.
허면 나는 이제 죽어야 하는가? 료유온코 (鏡湖池)가 달빛을 흘려보내는 곳은 피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방문 앞이었다.
어제 이 방에서 어느 승려 하나가 손목 혈관을 끊었다. 오늘은 내가 이 방 안에서 딸딸이를 쳤다. 천장에는 백학과 물오리 모가지가 흔들흔들 걸려있다.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니 천공이 뱀의 비늘처럼 모서리가 바싹 독이 올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운다. 청록빛 정적이 부슬부슬 내 얼굴 위로 듣는다. 아까 길거리에서 보았던 구걸하던 여자아이 울음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온다. 동전 몇 닢쯤은 내 호주머니 안에 있을 터였다. 나는 죽고 싶었다. 비단 기모노로 덮인 네 얼굴이여! 얼굴 가득 덮인 자상으로 늘 뜨거운, 네 얼굴이여! 킨카쿠지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퀘퀘한 이끼냄새 곰팡이냄새가 새빨간 내 폐의 벽을 긁는다. 그리고 내게 속삭인다.
너 어디로부터 돌아왔는가? 나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너 어디로부터 돌아왔는가? 어디로 떠나가려는가? 저 황금을 더럽히려는가?
그러면 나는 혼잣말인듯 중얼거리며 대답한다. 료유온코에 비치는 것은 달빛도 황금지붕도 아니다. 그 여자의 새하얀 뼈가
이제는 료유온코 부서지는 투명한 수면 위에서만 비친다. 새하얀 뼈가 밤하늘 흐릿한 보랏빛 한가운데 떠있다. 이렇게
사방에 아무도 없는데. 달빛을 함께 나눠 마실 누구도 없는데.
그러면 킨카쿠지 적송(赤松)기둥이 혼자 울기 시작한다. 내 폐에 염증이 차오르고, 숨소리 속에 황홀한 죽음이 섞여들고, 숨소리 속에 단내가 피올라오고, 킨카쿠지 황금지붕 위로 내 시선이 기어올라간다. 부끄런 금송의 실루엣만 으스름하다. 꿈틀거리는 수면 위로
금송이 얼굴을 기울인다.
그 여자는 아주 오래 전 킨카쿠지 앞 료유온코에 몸을 던졌다고 했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현실과 이상의 혼돈 상태가 어루는 상황을 봅니다
시간 속 번민과 상념이 천착적을 다가옵니다
인간성 상실이 염원하는 염력의 소환이 충돌로써 숭고함으로의 길을 보이고 있습니다
차폐된 자기애가 끄집어내려는 자아가 혼돈에서 이탈됩니다 아득한 절규와 호환되기도 합니다
모순을 싫어 하는 의지가 끈질겨 세상과의 모순이 당연해 보입니다
생명의 의지의 힘이 축약되어 시의 생명선이 짧아집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어떻게 제 시 속을 이렇게 후벼파서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실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보통 내공이 아니십니다.
시인님의 평 그 자체가 깊이 있는 시 같습니다.
날건달님의 댓글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내 이름은 콜롬보에요. 오래전 항해의 목적은 따로 있었지만 이사벨 여왕에게 황금을 받치기 위해 엘도라도인 지팡구로 항해를 떠난 적이 있었죠.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지팡구는 동방, 대륙으로부터 1,500마일의 바다에 있는 섬이다. 주민은 살갗이 희고 은근히 정중하고 우아하다. 독립국으로 군주를 섬기며 어느 나라로부터도 철주를 받지 않는다. 막대한 황금이 있다. 군주는 모두 순금으로 덮어씌운 아주 큰 궁전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집이나 교회의 지붕을 연판으로 이듯이, 이 나라에서는 궁전 지붕을 전부 순금으로 이고 있다. 그 가치는 수량으로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또한 많은 방은 바닥을 손가락 2개 두께의 순금으로 깔았다. 큰방이나 창들도 모두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실제 이 궁전의 호화로움은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상상의 벽을 벗어난 것이다. 진주도 아름다운 장미색에, 거기에다 둥글고 큰 진주가 많이 잡힌다. 이 섬에는 사람이 죽어 포장할 때는 죽은 사람의 입에 진주를 하나 넣는다. 진주 말고도 여러 가지 보석을 풍부하게 산출한다. 정말로 부유한 섬이다. 그 막대한 재보(財寶)에 대해 들은 황제 쿠빌라이가 이 섬을 정복하려고 생각했었다.'라고 되어 있었지요. 믿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나는 모험가이고 탐험가이기에 일단 나의 판단을 믿고 지팡구를 항해 줄곧 나아갔지요. 하지만 끝내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시인님의 글을 읽고 만약 콜롬보가 지팡구를 발견하고 금각사에 도착하였더라면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지,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시 한 수 읊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예전에 쿄토에 갔을 때, 금각사를 방문했던 기억이 나서 적어보았습니다.
금각사와 대응되는 방은, 제가 폐렴에 걸려 누워있던 미국의 검은 방안입니다. 이 검은 방안에서 일본에 있는 금각사를 보는 거죠.
죽음과 황홀과 병이 뒤섞여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이루는 금각사를 적어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