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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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37회 작성일 20-11-15 12:53본문
등꽃 아래서
등꽃 아래에 서면
먼 길 돌아오는 박새를 품은
내 누이가 보인다. 보랏빛인가 연한 살색인가
보드라운 음율이 바람도 없이 살랑거리는데
나는 파문이 번져나가는
그 소리 없는 속삭임을 듣는다.
내 마음은
투명한 유리알들을 주욱 내 앞에 늘어놓는다.
유리알 속으로 발을 쭈욱 뻗는다.
사랑하라고,
그렇다면 내 사랑은 억세게 위로 뻗어올라가는
줄기가 있었던가.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만났던 것일까, 저 무수한 등꽃들 아래
침묵을
헤쳐나오는 중에.
나는 어쩌면 저 등꽃들 중 하나와
우연히 닿았는지도 모른다. 박새의 날갯짓이
아주 우연히
내 누이의 형상과 겹쳤듯이. 가벼운 깃털 몇개가
내 누이의 새하얀 다리를
꼬집었듯이.
멍든 누이의 이름은 내게 하나다.
언제 우리는 갈라져나왔는가? 하나의 태중에서
새하얀 천조각처럼
물거품처럼
함께 살을 찢었다. 입술도 찢고 표정도 찢고
네가 청록빛 옷을 입는 동안
심연 속 굴러 떨어지는
유리알들이 파열되는 동안
나는 널 그리워하다 죽었다.
내가 등꽃들 안에 설 날이
등꽃들 위에도
등꽃들 아래에도 없다.
수면 아래로 걸어내려가면
등꽃은 더 흐드러지고
보랏빛은 더 선명해지고
지느러미 달린 등꽃들은 위로 아래로 멀리 옆으로
퍼져나간다.
예리하고 반짝이던 비늘들이었던
내 황홀의 파편들은 이제
표현을 얻은 것이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언어 유희가 직관적으로 되어 있어 가늠의 필요가 없어
시가 쉽게 다가옵니다
통찰력으로 된 철학이 가세하면 오래 전의 명시 대역을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현학적으로 된 논리의 강화도 있으면 합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철학과 논리같은 것은 간단하게 순수시에
녹여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