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갑이 마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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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629회 작성일 20-11-28 11:08본문
한우 명가와 베트남 노래방 사이 짜투리 공터
빨래 건조대에 겹쳐 널린 목장갑이 마르고 있다
냉동된 햇살 한 짝을 벌려놓고 움켜 쥔 칸 칸으로
저며낸 그림자가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목장갑 속으로 손을 들이면 한 손가락도 빠짐없이
바싹 와닿는 가호(加護)는 누구의 것인지,
한 묶음 목장갑에서 한 켤레 목장갑을 빼내면
한 나절이면 피기름에 절어 벗겨질 기도를 하고 있다
쓰윽쓱, 야스리에 칼을 비벼대면 한 눈에 저며지던
기름 줄기와 갈변한 언저리와 부위와 부위의 경계들
하루만 죽여서 눕혀 놓으면 말끔히 손질할 것 같은
찌푸둥한 환락과 게으럼,이것도 저것도 아닌 주제들이
살아서는 두리뭉실 목숨을 접합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두려움이 내가 쥔 칼이라니,
투박한 믿음은 피하기를 기도하지 않아
뜨거운 것은 따스함이 되고
시린 것은 시원해지고
베임은 스침이 되는 응답은 번번히 이루어지는데
피기름으로 떡이지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한 잎 한 잎 붉은 꽃잎을 피워내고
피비린내에서 건진 손을 승천 시키는 것이다.
바람에 날려 떨어진 목장갑 한 짝,
푹푹 삶아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흐르듯
긴 실오라기 하나가 풀리고 있다
댓글목록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목장갑, 시멘트 바닥, 야스리, 떡지다,......"
이런 현장감 있는 단어로 날것의 투박한 믿음을 노래하고 있군요.
믿음은 투박해야 맛이 있지요.
그 다음은 승천이 기다릴테니,
다만 내 손에 쥔 칼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니,
참 어려운 생입니다.
또 우리의 시이기도 하구요.
잘 읽었습니다.
젯소님의 댓글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나다니다 보면 상가 골목에는 한 두개 쯤 목장갑을 가득 널어 놓은 빨래건조대가 있지요.
그기에 어마무시한 시가 널려 있는 것 같은데도 포착이 잘 되지 않아 오래 낑낑거렸습니다.
기껏 잡은 놈이 이것인데, 두고두고 씨름을 해보고 싶습니다.
poet173님의 댓글
poet17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젯소 시인님 오랜만입니다
자주 보고 싶네요
젯소님의 댓글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감사합니다. 173님! 근데 누구신지 물어보면 결례가 되겠죠? 저를 기억하신다니, 저도 보고 싶습니다.
오영록님의 댓글
오영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좋은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기껏 잡은 것이 용의 꼬리도 아닌 여의주군요..//
젯소님의 댓글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오영록 선생님, 과찬이십니다.
자꾸 눈이 그리로 가네요.
우리가 발견해주어야 할 것 같은 보석 같은 삶들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