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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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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323회 작성일 20-11-29 10:35

본문

노루 / 백록

 

바람 부는 날엔
컥컥 울었다
산자락 억새를 품고 억억 울었다
비가 오는 날엔
곶자왈로 숨어들어 커억커억 울부짖었다

마침, 눈이 내린다
당신의 하얀 전설이 펄펄 나린다
홀로 노릇해진 눈망울이 갈피를 잃고 허둥대고 있다
이쯤이면 죽음 같은 이 산을 떠나야 하루라도 더 연명하는데
무심한 산은 막상,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한 치 앞은 눈인 듯 구름인 듯
푹신한 여기가 저승인 듯 이승인 듯
사방은 온통 저승으로 가는 길
이승은 천리 밖이란다
더욱이 제 근친들이 오락가락하는 거기엔
정체 모를 역병이 기승을 부린단다

그 와중에 언뜻, 백록담 영봉에서 흐느적거리는
허연 머릿결이 얼씬거린다
아! 저건 필시 설문대할망의 손짓이라며
저를 향한 초혼招魂일 거라며
잠시 움찔거리는데
하얀 까마귀 얼어 무뎌진 뿔
툭 치며 훅 날아간다
정신 차리라는 듯

나는 오늘 1100고지에서

뻔한 거짓말 같은 흰 노루 한 마리

스스로 잡아먹고 있다

노릇노릇한 생각으로

하얀 거짓말로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잠시 / 백록


깜빡 졸거나 깜빡 깨거나
일단, 그런 삶이라고 하자
어쩜, 누에의 시간이라고 해도 괜찮겠다

나방으로 날기 위한
벌레의 몸부림 같은

깜빡 깨거나 깜빡 졸거나
일단,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언젠간 훨훨 날고야 말겠다는
그런 詩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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