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눈은 붓다의 눈 * * 눈빛이 옛날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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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4회 작성일 21-02-08 17:58본문
내 속눈은 붓다의 눈
사문沙門/ 탄무誕无
탈 벗고 한 말을
탈 쓰고 듣는 사람들,
가면 벗고 쓴 글을
가면 쓰고 읽는 사람들
탈 없이 하는 내 모든 말
탈 쓰고 들이대니 탈 나지
아 글쎄 그러니
지 깐 놈이 탈 안 나고 배겨
탈탈 너를 털면
탈탈 나를 털 수 있어
너의 속사람이 나의 속사람,
똑같은 붓다니까
탈탈 너를 다 털어야
장착할 수 있는
천부적 눈을 가진
나를 똑바로 알 수 있어
차별(분별심)은 무차별을
죽어도 밝힐 수 없는데 반해
털 것 없는 다 털림
'무차별이 차별의 세계를 밝힌다'
*
*
'무차별이 차별의 세계를 밝힌다'/
고유한 우리 인간 본래 성품을 취해
본래 성품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
깨침의 문구(언어)입니다.
조사관, 조사선입니다.
제도권 언어 나부랭이 뜻만 아는
그런, 언어에 속지 마십시오.
속뜻은 제도권 언어의 뜻을 넘어서 있습니다.
깨쳐야 이런 깨침의 문구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못 깨치면 이런 깨침의 문구에 돌대가리 됩니다.
공증(空證)/
법에 대한 인가(印可)를 가리킵니다.
우리 인간 본래 성품(법)에 대한 인가입니다.
2008년 출가사문 도창으로부터 법을 인가받았다고
두세 번 말씀드렸습니다.
법력法力(인간 본래 성품에 대한 힘, 앎)은 더 뛰어납니다.
당시 신자들을 통해 그분께서도 은연중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더 뛰어난지, 안 뛰어난지는
깨친 사람이라면 제가 법을 쓰는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깨친 선각(先覺), 선사(禪師)로부터 물에 도장을 찍듯,
허공에 도장을 찍듯 심증을 받는 인가법입니다.
인가 없이 깨침을 말하고, 법을 펼치는 것은 사도(邪道)입니다.
사악한 자가 입으로 부리는 요술입니다.
무차별, 나, 속사람, 붓다/
이름을 지어 부처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인간(만물)의 본래 성품을 가리키는 깨침의 언어입니다.
너와 나, 우리 모두의 본래 성품은 차별이 없고,
같고 같아 두루 평등합니다.
모든 만물 또한 그러하고요.
선시(禪詩)에서 차별은 시기, 질투, 취사선택,
분별로 모든 걸 판가름하는 중생계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제가 친절히 가르쳐주는데도 자꾸 깍``깍 까먹고 있지요.
저의 모든 글을 제발 중생심으로 읽지 마십시오.
중생심으로 읽으니
말도 섞기 싫은 같잖은 태클(댓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저의 글은 중생심 하고는 영 딴판 공(본래 성품)에서 놀고 있습니다.
'깨달은 중생심 가지고 깨침에 들이대지 마십시오.'
깨달음은 요랬다 조랬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골 때리는 중생계입니다.
깨침은 시방세계, 붓다입니다.
중생은 깨닫는 것이지, 깨치는 것이 아닙니다.
깨침과 깨달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깨닫기만 하지 말고, 깨치십시오.
우리 인간 본래 성품에 대해 확철대오 하라는 것입니다.
중생 심보로 '깨침에 태클(댓글)을 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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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이 옛날과는 다르다
사문沙門/ 탄무誕无
내 구경,
내 삶,
다시 태어남과
모든 만물의 죽음을 거머쥔
내 사람
내 앞에 있네
끝내 말 없음과 통한 경지,
답 왔네, 답 왔어
어따 아닌 게 아니라 참(진리),
눈빛 꺽은 내 사람 만나
분별맞이 의무방어전이 끝났다
우리 인간 본래 성품에서
텅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없음이 아니다
없는 빈 채로 오묘하게 '있음'이다
진공묘유(眞空妙有),
속 따로 겉 따로
지식을 파먹고 산 심부름꾼 죽이고
본래 모습 나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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