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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 (漫畫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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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2회 작성일 21-03-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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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 (漫畫鏡) 



시대와 불화했다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마을 어귀에 서 있다. 지금은 차길이 나서 나무 둥치 곁으로 하루 종일 자동차들이 


지나다닌다. 몇년 전 나무가 죽을 뻔해서 사람들이 수액을 꽂아넣어주고 짚방석으로 둥치를 둘둘 감아주었었다. 그 해에 내 동생이 불구로 태어났다. 


나는 나뭇가지에 홍역들이 잔뜩 매달려 슬그머니 산들바람이라도 불면 딸랑 딸랑 풍경소리처럼 흐느낌이 번져나가는 것을


엿들으며 학교에 갔었다. 그러면 길가에 작은 꽃다발들이 하나 하나 죽은 아이의 얼굴들처럼 무표정하게 죽 늘어서 놓여져 날 


노려보는 것이었다. 정자나무 가지에서 어느날 팔뚝만한 구렁이가 천천히 기어내려왔다고 입 바깥으로 가시나무꽃을 가끔 내밀던 할아버


지는 만취하신 채 차가운 바윗돌 베고 주무시다 뇌혈관이 터져 돌아가셨다. 아직 내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저 정자나무는 마을 길을 둘로 나누어서 두 길은 다시는 합쳐지지 않은 채 고개 너머 구름이 모락모락 일어나는 산 능선을 굽이굽이 돌아 


민들레꽃을 허리 숙여 바라보던 그 소녀의 이름을 나는 영영 알 수 없었다. 난자당한 민들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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